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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 구원하시는 하느님” _2026.3.15. 가해_사순4주일_강론

James Chae 2026. 3. 15. 07:17

 

2026.3.15. 가해_사순4주일

사무상 16:1-13 / 시편 23 / 에페 5:8-14 / 요한 9:1-41

 

 

세상의 : 구원하시는 하느님 

구원론과 그리스도론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구호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한 표현이지만, 이로 인해 결국에는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생겼습니다. 이러한 구호는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을사후 세계의 상태나 안전한 티켓정도로 오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구약 성서가 말하는 구원은 사후에 대한 이야기보다 현재에서 역사하는 하느님의 구원 사건에 집중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신약의 구원론은 정확하게 구약 구원론의 연장입니다. 구약적인 표현으로 구원은치명적인 위협으로부터 어떤 대상을낚아채 오는 ’”(클라우스 베스터만) 뜻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약 전반에 걸쳐서 다양한 인간들이 이러한치명적 위협으로부터 하느님의 구원을 체험했다는 것을 압니다. 개인에서 부족으로, 부족에서 민족으로, 민족에서 국가로 구약은 이러한구원하시는 하느님 역사를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사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말씀드린 대로구원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구원 상태가 아니라과정입니다. 구약은 하느님의 구원하심을 동사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동사로 묘사했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사건 속에서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기본적인 서사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개인이나 국가에치명적인 곤경 생기고, 그다음에는 인간의곤경으로부터 부르짖음 있습니다. 그러한부르짖음다음에는 하느님의 응답이 나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응답은구원하시는 사건 통해 현실이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구원받은 사람들의 응답으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구약 전반에서 확인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서사구조가 예수님의 치병 사화의 기본 서사구조와 유사합니다. 처음에 병자의 상태를 묘사한상황 묘사 있습니다. 후에기적적 치유 묘사되고, 치유가 효력이 있었음을 증명하는치유 실증 나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주변 목격자들의 반응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러한 서사구조는 구약의 구원 서사와 맥을 같이 합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는치명적 위협 노출된 인간의 실존과 상황이 전제됩니다. “치명적 위협 놓인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지속하기에 불가능한 상태에 놓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느님 대한 구약의 묘사를 보면 구원의 중재자들이 등장합니다. 아브라함, 모세, 사사들, 다윗왕, 그리고 선지자들. 이러한 중재자들을 하느님께서 부르셔서 구원의 임무를 위탁하는 형식을 띱니다. 훌륭한 중재자들은 문제가 없지만, 잘못된 중재자 역할을 했던 왕들의 등장은 이러한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분명 방해 요소가 됐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구원 신학은 심판 신학과 연결됩니다. 무기력한 중보자와 백성의 불신에 의해 창세기에 제시된 모든 언약들이 지켜지지 않게 되고, 결국에는 하느님과의 관계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성서의 예언서들은 끊임없이구원하시는 하느님심판하시는 하느님 대한 이미지가 교차 사용됩니다. 그러므로구원하시는 하느님 심판하시는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이러한 신론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신약 속으로 스며듭니다.

 

오늘 예수를 만난 시각장애인은 나면서부터 앞을 없는 사람입니다. 그는 실로암 연못 근처에서 사람들의 천대를 받으며 구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어둠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의 형편이 얼마나 절망적이었을지 우리는 쉽게 짐작할 있습니다. 심지어 오늘 말씀에서 제자들은 유대교의 관점으로 그의 절망적 상황을 문제로 보기도 했습니다. 그는 구약성서가 말하는 구원이 필요한치명적 위협의 상태 놓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아셨던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다르게 먼저 그에게 접근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그를 통해 드러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놀라운 정확하게하느님의 구원 사건 암시합니다. 주님께서는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어라라고 말씀하셨고, 그가 가서 씻자 놀랍게도 앞을 보게 되었다고 요한복음은 기록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이렇게 하나의 사건으로 드러났습니다.

 

물론 오늘 요한복음 9장은 정확하게 요한복음 8장의 말씀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예수의 자기 증언에 대한 확장된 이야기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서도 주님께서는 똑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그냥 빛이 아니라세상의 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자신이세상에 있는 동안이라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파송 받아 오신 분이심을 드러내고, 동시에 자기 죽음 또한 예고하십니다. 오신 분이시니 이제 되돌아가셔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요한 기자가 연못의 이름인실로암 뜻을파견된 라고 의역을 덧붙인 것입니다. 실로암은 히브리어실로하흐(שִׁילוֹחַ, Shiloah/Shiloach)” 그리스식 발음입니다. 실로암은 원래 농업용수처럼물을 흘려보냄또는수로, 운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를 예수님의 정체성과 연결하여 의역했습니다. , 실로암을파견된 의역함으로써 이를 예수님과 관련지은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요한복음은 예수께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중재자가 되심을 드러냅니다. 구약에서구원의 말씀을 중재하는 구원 행위를 하는 중재자 구분되었던 것이, 이제 예수님에게서 하나가 됩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구원 약속과 구원의 행위를 모두 중재하는 분이십니다. 말은 예수님 자신이 말씀과 약속이면서 사건이 됨을 뜻합니다. 이것이 구약에 나오는구원하시는 하느님 구원론이 신약에서 그리스도론과 하나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가능한 것은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면서 동시에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자이기 때문이라고 요한복음은 드러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그리스도론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의 신원은 시각장애인을 구원하는 치유 행위에도 불구하고, 당시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구약에 대해 알고 있었고, 구원하시는 하느님이란 신론을 누구보다 이해했던 자들이었는데도 말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유대인들은 치유 사실조차 믿지 않아서 그의 부모를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해 보기도 했습니다.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이 있게 사건은 분명 구약이 말하는구원하시는 하느님 구원 사건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연결성을 부인했습니다. 순간 그들은 구약을 지탱해 구원하시는 하느님 대한 믿음조차 저버린 것입니다. 그들의 조상이 어떻게 이집트에서 구원받았는지, 그리고 이스라엘이 어떻게 구원의 약속을 받았는지 애써 그러한 것을 거부한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상태를 요한복음은보는 사람과 보는 사람 극단적 대비의 상징어를 사용하여 설명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9:39

 

 

말씀으로 누가 가운데 있고, 누가 어둠 가운데 있는지 분명해집니다. 그리스도의 가운데서 가치의 전도가 일어난 겁니다. 그동안 본다고 자신했던 사람은 이제 보는 사람이 되고, 보던 사람은 이제 보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가치 전도는 세상을 비추는세상의 때문에 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하느님의 선민이고, 하느님의 구원은 이스라엘에 한정됐다고 자신했던 사람들이 이제 예수의 빛으로 말미암아 결국 보지 못하는 자로 판명이 났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도 예수 비유가 자신들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 요한 9:40

 

 

이것은 당시의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똑같이 던질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우리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 

 

,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고 자신하는 우리에게도 우리가 제대로 보는 자인지 돌아보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믿는 확신만큼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도, 특히 바리사이파 사람들도구원하시는 하느님 대한 굳건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아는 대로, 자신들의 믿음대로 예수님을 공격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은구원하시는 하느님 약속을 받은 자라는 믿음이 굳건했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하느님의 구원 행위가 반드시 메시아를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 성취로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믿음이 지식을 추동하지 않고, 지식이 믿음을 보증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지식이 완전히 하나로 일치되어 속에 녹아나지 않으면 우리가 하느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이나 지식도 결국에는 어둠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의기소침과 미움, 다툼이 있는 이유는 우리가 아직 온전히 그리스도의 가운데 있지못하다는 방증입니다. 이는치명적 위협의 상태에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취할 자세가 아닙니다. 그러니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제대로 본다고 자신했지만, 실은 시각장애인으로 판명이 것처럼 우리도 겸손히 우리가 제대로 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은 폭로되면 빛을 받아 드러나고 빛을 받아 드러나면 빛의 세계에 속하게 됩니다.
잠에서 깨어나라. 죽음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빛을 비추어주시리라.’” 에페 5:13

 

 

오늘 읽은 에페소서 말씀은 이렇게 우리 안에 믿음과 지식의 부조화가 바로 어둠이고, 이는 오직 통해서 폭로된다고 말합니다. 이는 어두운 방에 불을 켜면 안에 있던 모든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 안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Ἐγώ εἰμι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비추시는 동안, 우리의 모든 감추어졌던 본질, 우리의 믿음, 우리의 지식이 명명백백하게 가운데 드러납니다. 그래서 사순절은 우리 자신을 가운데서 완전히 노출하는 사건이 됩니다. 우리가 믿었던 것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 우리가 숨겨왔던 것들, 우리가 남을 판단하고 비판했던 것들, 우리 안의 모든 어둠이 가운데 드러나는 사건입니다. 그러니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고, 제대로 보는 사람이 되라고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의 눈은 항상 밖을 향하고 있어서 남의 흠은 있지만, 자기 자신은 제대로 수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을 제대로 있는 유일한 길은 우리 안의 어둠을 몰아내는 그리스도의 빛뿐입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단순한 전례적 절기가 아니라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대면하는 사건입니다. 우리 모두가 사순절에 그리스도의 가운데 서서 참으로 보게 되는 은총을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은총이 우리와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사순4 (가해)

 

본기도

진리의 하느님,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주님의 의로움을 있도록 우리 눈을 열어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빛의 자녀로 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무상 16:1-13

1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사울을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서 파면시켰다고 해서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만 하고 있을 셈이냐?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길을 떠나거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사람에게로 보낸다. 그의 아들 가운데서 내가 왕으로 세울 사람을 하나 보아두었다.” 2 사무엘이사울이 알면 저를 죽일 텐데 어떻게 갑니까?” 하고 여쭙자 야훼께서는, “암송아지 마리를 끌고 가거라. 야훼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면서 3 이새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러면 네가 일을 내가 알려주리라. 너는 내가 지적하여 일러주는 자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성별시켜 나에게 바쳐라.” 하고 이르셨다. 4 사무엘은 야훼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성읍의 장로들은 안절부절못하고 그를 맞으며언짢은 일로 오신 것은 아니 겠지요?” 하고 물었다. 5아니오. 좋은 일로 왔소. 야훼께 제사를 드리러 것이오. 그러니 모두들 목욕재계하고 함께 제사 드리러 갑시다.” 이렇게 일러놓고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목욕재계시킨 다음 제사에 나오라고 초청하였다. 6 그들이 나타나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바로 여기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성별하실 자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야훼께서는 사무엘에게 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마라. 그는 이미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하고 이르셨다. 8 다음으로 이새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에 나와 서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아들도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9 이새가 다시 삼마를 보여드렸지만, 사무엘은 그도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다. 10 이렇게 이새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에 나와 뵙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아들 가운데는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없소.” 하고 11 이새에게 밖에 아들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새가막내가 있긴 하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사무엘이 이새에게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하고 일렀다. 12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데려온 그는 볼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 야훼께서 말씀을 내리셨다. “바로 아이다. 어서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13 그리하여 사무엘은 기름 채운 뿔을 집어 들고 형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야훼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 사무엘은 길을 떠나 라마로 갔다.

 

 

 

성시_시편 23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     아쉬울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놀게 하시고
.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몸에 생기가 넘친다.
.     이름 목자이시니
.     인도하시는 , 언제나 곧은 길이요,
4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없어라
.     당신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     인도하시니 걱정할 없어라.
5    원수들 보는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     기름 부어 머리에 발라주시니,
.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
.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에페 5:8-14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9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 10 주님을 기쁘게 하여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십시오. 11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행위에 끼여들지 말고 오히려 그런 일을 폭로하십시오. 12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숨어서 하는데 그것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입니다. 13 모든 것은 폭로되면 빛을 받아 드러나고 14 빛을 받아 드러나면 빛의 세계에 속하게 됩니다.
.   “잠에서 깨어나라.
.    
죽음에서 일어나라.
.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빛을 비추어주시리라.
.  
  이사 26:19, 51:17, 52:1, 60:1
말씀이 뜻입니다.

 

 

 

복음서_요한 9:1-41

1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소경을 만나셨는데 2 제자들이 예수께선생님, 사람이 소경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탓도 아니고 부모의 탓도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4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터인데 때는 아무도 일을 수가 없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6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소경의 눈에 바르신 다음, 7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파견 라는 뜻이다.) 소경은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왔다.
8 그의 이웃 사람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온 사람들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9 어떤 이들은 바로 사람이라고 하였고, 어떤 이들은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눈을 뜨게 사람이내가 바로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10 사람들이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는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르시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기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띄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2 그들이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었으나 그는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13 사람들은 소경이었던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이번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에게 눈을 뜨게 경위를 물었다. 그는그분이 눈에 진흙을 발라주신 뒤에 얼굴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는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면 하느님에게서 사람이 아니오.” 하는 사람도 있었고죄인이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을 보일 있겠소?” 하고 맞서는 사람도 있어서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17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8 유다인들은 사람이 본래는 소경이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20 그의 부모는, 틀림없이 때부터 눈이 멀었던 저희 아들입니다. 21 그러나 그가 어떻게 지금 보게 되었는지, 누가 눈을 뜨게 하여주었는지는 모릅니다. 자란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일은 제가 대답하겠지요.” 하였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유다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23 그의 부모가 자란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 십시오.” 하고 말한 것도 때문이었다.
24 유다인들은 소경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놓고사실대로 말하시오. 우리가 알기로는 사람은 죄인이오.” 하고 말하였다. 25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26그러면 사람이 당신에게 무슨 일을 했소?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했단 말이오?” 하고 그들이 다시 묻자 27 그는 이야기를 벌써 해드렸는데 때에는 듣지도 않더니 다시 묻습니까?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28 말을 듣고 그들은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너는 그자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29 우리가 아는 대로 모세는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지만 그자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30 그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분명히 눈을 뜨게 하여주셨는데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도 모른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들어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2 소경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준 이가 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33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 34 유다인들은 말을 듣고너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께서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8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39 예수께서는내가 세상에 것은 보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가려,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40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말씀을 듣고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하고 대들었다. 41 예수께서는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