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4. 나해_성탄밤
이사 9:1-6 / 시편 96 / 디도 2:11-14 / 루가 2:1-14(15-20)
“성탄의 이야기들”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성탄절마다 우리는 마구간을 꾸밉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야기를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그 탄생을 기념하며 그 의미를 되새기기 위함입니다. 보통 한 아기가 구유에 누워있고 한 여인이 지긋한 사랑으로 곁에서 아기를 바라봅니다, 그 곁에는 아빠인 듯 보이는 한 사람이 서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 예수입니다. 그 곁에 이란 사람의 복장을 한 세 사람과 낙타들, 그리고 목동들과 염소와 소, 양들, 천사 등이 배치가 됩니다. 장소는 마구간입니다. 마구간은 지역적인 특징이 반영되어 다양한 모습으로 장식됩니다. 우리는 보통 움막과 볏짚으로 꾸밉니다. 이러한 마구간 장식은 우리의 동심을 자극하고 아무런 거부감 없이 그 장면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은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의 이야기를 교묘하게 결합시킨 혼합물입니다.
마태오복음에는 ‘마구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소도 말도, 양도 염소도, 목동들도 물론 없습니다. 동방박사가 방문하여 아기 예수를 경배한 곳은 마구간이 아니라 “어떤 집”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탄생이야기는 모세의 탄생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유아살해의 이야기와 연결이 됩니다. 물론 이집트 피신이야기도 덧붙여집니다. 동방박사는 당시 선진국이었던 파르티아의 마기(magi) 들입니다. 그럴 정도로 아기 예수는 선진국 특사의 예방을 받을 만한 인물로서 왕이신 그리스도임을 마태오복음은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 예언의 성취로서의 그리스도, 즉 왕으로 오신 구세주에 대한 마태오의 예수 탄생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다윗왕의 계보를 잇는 메시아로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출생하는 것으로 기록됩니다. 그리고 그가 받은 예물은 왕이면서도 제사장임을 상징하고 또 그의 희생을 상징하는 “황금과 유향 그리고 몰약”이었습니다. 마태오가 그리는 그리스도는 인류를 구원하실 왕이시며, 제사장이요,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해 희생하실 분이십니다.
그러면 루가복음은 어떻습니까? 루가복음에서 우리에게 친숙한 마구간이 등장합니다. 역사가적인 기질이 넘치는 루가복음 기자는 나름 예수의 탄생이야기에 역사적인 사실을 접붙입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호구조사를 한다는 이유를 덧붙입니다. 이것이 예수의 부모가 나자렛을 떠나 다윗왕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이동한 이유로 제시됩니다. 사실 호구조사를 위해 자신의 고향으로 가는 것은 역사적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들은 베들레헴에서 방을 얻지 못해 여관의 마구간에 겨우 자리를 얻어 마리아는 그곳에서 몸을 풀었습니다. 그리고 이 아기 예수를 방문한 것은 선진국에서 온 동방박사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천대받고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남들이 잠을 자는 동안 사람들이 맡긴 양과 염소를 밤새 돌보며 잠을 잘 수 없는 목동들이었습니다. 그 추운 날씨에 밤을 새우며 양과 염소를 지키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절망과 고통 가운데 일상을 보내던 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세상을 구원할 아기 예수의 탄생을 알려 줍니다. 결국 루가복음은 미혼모나 목동과 같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들에게 기쁜 소식이 전해졌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즉 이 말은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는 궁전에 있는 지배계층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들, 고통받는 자들, 소외받는 자들에게 오신 것입니다. 루가복음 기자의 관심은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자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는 사무엘이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것같이 무척 총명하게 무럭무럭 자라났다고 기록됩니다.
이에 반해 마르코복음은 예수의 탄생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마르코복음의 시작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로 예수의 출생이야기를 대신합니다. 그래서 그는 광야의 외치는 소리인 세례자 요한의 선포로부터 예수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간 것이지요. 요한복음의 경우는 매우 독특한데,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선재하신 로고스로서의 그리스도론을 전개함으로써 매우 신학적으로 다듬어진 예수의 기원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로와 모든 서신서들은 대부분 예수의 탄생에 대해 침묵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주로 예수의 희생과 부활에 대해 언급합니다. 사도 바울로의 서신이 4 복음서보다 먼저 써진 것을 감안하면 신기할 정도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복음만을 선포합니다. 예수의 출생과 그의 유년시절은 그의 관심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한 예수를 만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서남동이나 우리나라 민중 신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일본의 신학자 타가와 켄조(田川建三)는 예수의 탄생을 철저히 그 시대에 살았던 민중의 관점에서 서술합니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예수는 기존 권력이 감당할 수 없는 그 시대를 거부하고 새로운 미래를 연 선구자로 묘사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래는 아기를 통해 담보되고, 그 아기는 미래의 해방을 성취한다는 것입니다. 그의 관점에 의하면 루가복음의 탄생이야기는 그런대로 민중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지만, 순종의 미덕을 강조한 것은 지배계층에 편입된 종교의 삽입정도로 취부 합니다. 기존 질서에 편입되고 포섭된 상황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예수 탄생 이야기는 “한 혁명적 인물의 미화를 통한 기존 체계의 포섭과 말살의 기제 속에 형성된 가상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물론 역사의 예수의 관점에서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공생애에서 ‘종교’와 ‘신앙’이란 부분이 그의 정체성에 매우 중요한데, 그것을 제외하고 ‘혁명’의 관점으로만 치우친 경향이 매우 큽니다. 예수와 하느님의 관계를 이스라엘의 종교적 맥락과 연관시키지 않고 과연 무엇이 남을지 의문입니다. 물론 사회를 변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서구 일변도의 신학에 빠져 있는 제3세계 신학자들에게 그의 주장은 매우 설득력 있게 현장감을 부여하며 한 때 신학계를 풍미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 탄생 이야기가 지닌 다양한 해석의 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4 복음서나 타가와 켄조도 서로 이야기는 다르지만 한 사건에 대한 어떤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실은 이것입니다. 이 천년 전에 한 젊은 사람이 팔레스타인에 있었고, 그는 이스라엘과 로마에 의해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출생에 대해 유추할 수 있는 자료가 전혀 없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마르코복음이 예수의 탄생에 대해 침묵한 것은 나름 지혜로운 방법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의 탄생보다 그의 삶이, 그의 죽음이, 그의 부활이 우리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탄생에 대해 교회가 집착한 이유는 예수 운동이 교회의 제도권 안에 정착되면서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교리 형성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마태오와 루가 모두 각각의 전승자료를 모았을 것이고, 각각은 그것에 기반하여 복음서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순진하게 그냥 꾸며낸 말이라는 주장은 너무나 무책임한 비판입니다. 이를 우리는 ‘마태오 특수 자료’, ‘루가의 특수 자료’라고 부릅니다. 그 출처의 진위 여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보다 오히려 이런 경우에는 복음서 기자들의 진술의 진실성을 따르는 편이 더 안전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각각의 탄생 이야기는 말 그대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냐 보다는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의 진실성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우리는 아무도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이야기를 읽으며, 그리스로마 신화를 읽으며 그것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그렇듯이 그 이야기에는 저자의 생각과 그 시대의 ‘삶의 자리’가 반드시 담겨 있게 마련이고, 우리는 이것을 이야기 행간에 담긴 은폐된 진실이라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수 탄생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성서 해석은 이러한 은폐된 진실을 과거와 오늘의 삶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해석하는 과정입니다. 마태오는 왕으로 오신,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었고, 루가는 가난하고 고통당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친구로서의 예수를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부활한 예수가 하느님의 말씀인 로고스이고, 이 우주의 통치자이심을 선포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는 예수의 이야기를 통해 인류를 죄악에서 건져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 믿음으로 구원받는 복음으로 우리에게 소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이야기는 아직도 살아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이야기는 우리의 교리와 신학에 의해 오랫동안 다듬어지고 확장되어 왔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개인적으로 예수를 만나는 이야기가 차단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는 살아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그의 오심은 여전히 열려있는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마태오와 루가와 요한과 마르코처럼, 또 사도 바울로나 타가와 켄조처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그분을 만나고, 그분을 느끼고, 그분과 함께 탄생의 이야기를 써나갈 여지가 여전히 열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이야기가 기존의 교리와 가르침을 멀리 넘어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다양한 이야기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각자가 만나는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쓸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아기 예수의 오심은 과연 무엇인가요? 교회의 교리와 선포가 아닌 여러분 만의 이야기가 있으신지요? 매년 찾아오는 성탄절이 이렇게 여러분과 아기 예수의 만남의 이야기의 연속이길 빕니다. 그러할 때 여러분의 성탄절이 자신 안에 체화되며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임마누엘이심을 더욱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과연 그분에게 무엇을 양도함으로 그분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드릴 건가요? 누구는 마구간을, 누구는 안락한 안방을, 누구는 신음하는 병실의 침대를, 누구는 차디찬 박스를 덮고 밤을 지새야 하는 전철역의 한 귀퉁이를, 누구는 전쟁의 피비린내 나는 폐허의 한 귀퉁이를 내어드려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어떤 자리에 모시든 그분은 그곳에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를 품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아기 예수를 ‘임마누엘’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밤 우리는 아기 예수를 맞이할 준비가 되었나요? 여러분과 아기 예수의 이야기를 시작할 준비가 되었나요. 이제 이 성탄절에 우리 각자의 품에 아기 예수를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오늘과 미래에 대한 소망이 간절히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 아기를 소개하고 함께하는 그러한 성탄절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성탄 밤
본기도
영광의 하느님, 아기 예수를 이 세상에 보내시어 거룩한 밤을 주님의 참 빛으로 비취셨나이다. 비오니, 이 빛으로 우리를 이끄시어 하늘의 영광을 찬미하며, 이 땅에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9:1-6
12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볼 것입니다.
.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쳐올 것입니다.
23 당신께서 주시는 무한한 기쁨, 넘치는 즐거움이
. 곡식을 거둘 때의 즐거움 같고,
. 전리품을 나눌 때의 기쁨 같아
. 그들이 당신 앞에서 즐거워할 것입니다.
34 당신께서는 그들이 짊어진 멍에와
. 어깨에 멘 장대를 부러뜨리시고
. 혹사하는 자의 채찍을 꺾으실 것입니다.
. 미디안을 쳐부수시던 날처럼, 꺾으실 것입니다.
45 마구 짓밟던 군화, 피투성이 된 군복은
. 불에 타 사라질 것입니다.
56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 그 어깨에는 주권이 메어지겠고
. 그 이름은 탁월한 경륜가, 용사이신 하느님,
.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
67 다윗의 왕좌에 앉아 주권을 행사하여
. 그 국권을 강대하게 하고 끝없는 평화를 이루며
. 그 나라를 법과 정의 위에 굳게 세우실 것입니다.
. 이 모든 일은 만군의 야훼께서 정열을 쏟으시어
. 이제부터 영원까지 이루실 일이옵니다.
라틴어 성서는 8:32하에서 9:1이 시작됩니다. 작은 숫자는 라틴어 성서의 구절 번호입니다.
성시_시편 96
1 새 노래로 주님을 노래하여라. ◯
. 온 세상아, 주님을 노래하여라.
2 주님을 노래하고 그 이름을 찬양하여라.
. 우리를 구원하셨다. ◯
. 그 기쁜 소식 날마다 전하여라.
3 놀라운 일을 이루시어 이름을 떨치셨으니 ◯
. 뭇 민족, 만백성에게 이를 알리어라.
4 높으신 주님을 어찌 다 찬양하랴. ◯
. 신이 많다지만
. 주님만큼 두려운 신이 어디 있으랴.
5 뭇 족속이 섬기는 신은 모두 허수아비지만 ◯
. 주께서는 하늘을 만드신 분이시다.
6 그 앞에 찬란한 영광이 감돌고 ◯
. 그 계시는 곳에 힘과 아름다움이 있다.
7 힘과 영광을 주님께 돌려라. ◯
. 민족들아, 지파마다 주님께 영광을 돌려라.
8 예물을 들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 ◯
. 그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돌려라.
9 거룩한 광채 입으신 주님을 경배하여라. ◯
. 온 땅은 그 앞에서 무서워 떨어라.
10 이 땅을 든든하게 세우신 주 앞에서
. “주님이 왕이시다”고 만방에 외쳐라. ◯
. 만백성을 공정하게 심판하시리라.
11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 바다도, 거기 가득한 것들도,
. 다 함께 환성을 올려라. ◯
. 들도, 거기 사는 것도,
. 다 함께 기뻐 뛰어라.
12 숲의 나무들도 환성을 올려라.
. 주께서 세상을 다스리러 오셨다. ◯
. 그 앞에서 즐겁게 외치어라.
13 그는 정의로 세상을 재판하시며 ◯
. 진실로써 만백성을 다스리신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디도 2:11-14
11 하느님의 구원의 은총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습니다. 12 그 은총은 우리를 훈련해서 우리로 하여금 불경건한 생활과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게 하고 이 세상에서 정신을 차리고 바르고 경건하게 살게 해줍니다. 13 그리고 위대하신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나타나실 그 복된 희망의 날을 기다리게 해줍니다.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몸을 바치셔서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건져내시고 깨끗이 씻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백성으로서 선행에 열성을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14절: 시편 130:8; 출애 19:5; 신명 4:20, 7:6, 14:2; 에제 37:23
복음서_루가 2:1-14 (15-20)
1 그 무렵에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렸다. 2 이 첫 번째 호구 조사를 하던 때 시리아에는 퀴리노라는 사람이 총독으로 있었다. 3 그래서 사람들은 등록을 하러 저마다 본고장을 찾아 길을 떠나게 되었다. 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의 나자렛 동네를 떠나 유다 지방에 있는 베들레 헴이라는 곳으로 갔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이 난 고을이며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기 때문이다. 5 요셉은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갔는데 그 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6 그들이 베들레헴에 가 머물러 있는 동안 마리아는 달이 차서 7 드디어 첫아들을 낳았다. 여관에는 그들이 머무를 방이 없었기 때문에 아기는 포대기에 싸서 말구유에 눕혔다.
8 그 근방 들에는 목자들이 밤을 새워가며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 9 그런데 주님의 영광의 빛이 그들에게 두루 비치면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 목자들이 겁에 질려 떠는 것을 보고 10 천사는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러 왔다. 모든 백성들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이다. 11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한 갓난 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 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하고 말하였다. 13 이 때에 갑자기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그 천사와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14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 땅에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15 ¶ 천사들이 목자들을 떠나 하늘로 돌아간 뒤에 목자들은 서로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사실을 보자.” 하면서 16 곧 달려가 보았더니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고 과연 그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17 아기를 본 목자들이 사람들에게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이야기하였더니 18 목자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일을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19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 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한 것이 천사들에게 들은 바와 같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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