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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일상 그리고 감사”_2025.10.12. 다해_연중28주일

James Chae 2025. 10. 12. 06:56

 

2025.10.12. 다해_연중28주일

예레 29:1, 4-7 / 시편 66:1-12 / 2디모 2:8-15 / 루가 17:11-19

 

 

평범, 일상 그리고 감사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평범한 일상. 모든 것들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때론 지루할 정도로 평범하게 느껴지던 일상이 흔들릴 , 우리는 일상이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 어떤 것임을 그제야 깨닫게 됩니다. 우리 자녀들의 일상인 수학여행이 참사로 끝나고, 축제에 놀러 나갔던 자녀가 귀가를 못하고, 사람들과 만나 마음껏 대화하고 식사를 하던 모든 일상이 전염병으로 중단됐을 , 우리는 일상의 회복을 위해 너무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지난 동안 깨달았습니다. 일상이 흔들리고 무너졌을 , “다녀오겠습니다.”라는 인사는 이상 평범한 일상의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안녕을 확인하고 묻는안녕하세요라는 우리의 인사가 절실해지는 요즘입니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변화로 인한 환경의 역습은 일상이 무너진 우리의 삶에 더욱 두려움으로 다가옵니다. 두려움과 염려가 일상의 평온함을 대신하고, 매일 만나는 사람들조차 이상 편안하게 느껴지지 않는 경험. 함께 먹고 자고 웃고 우는 가족이나 친구 간에도 적당한 거리감이 생기는 듯한 느낌. 우리의 일상이 무너진 이후 우리에게 다가온 많은 변화입니다. 손가락 끝에 작은 생채기가 나도, 아픔과 불편함에 우리의 일상이 포도주잔처럼 쉽게 금이 있다는 사실을 실감합니다. 일상은 결코 당연한 것도, 평범한 것도 아님을 말입니다. 인간 개개인에게 주어진 일상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인정하게 됩니다. 깊숙이 스며드는 아침 공기의 서늘함과 산자락에 매달렸다가 서서히 흐트러지는 구름의 모습이 이전보다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매년 명절 때마다 아버지 댁을 방문하면 안방에서 나오시며 우리를 반기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이번 명절에는 없었습니다. 당연하게 느꼈던 명절의 일상 풍경에 균열이 생긴 것입니다. 한번 쓰러지신 아버지의 일상은 좀처럼 다시 예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명절에는 지난 평범했던 명절의 일상이 어느 때보다 그리웠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가족・친지들과 웃고 떠들고 명절 음식을 함께 나누는 소소한 즐거움의 소중함. 병실에 누워계신 아버지는 이제 전혀 다른 그분의 일상으로 들어가셨고, 병문안하러 다니는 우리 가족도 새로운 일상을 경험합니다. 후회하는 중의 하나는, 당연한 일상이 달라진 후에나 일상에 대해 감사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을 찾아 방문했던나병환자들 모두 이러한 일상이 무너진 사람들입니다. 레위기 13장과 14장에 나오는나병에 관한 규례 보면 그들의 일상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짐작할 있습니다. 나병은 과거에는 원인을 없는 전염병으로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한번 걸리면 중추신경계와 피부에 세균이 침투하여 눈썹, 얼굴, , , 등이 일그러지고 신경조차 마비되는 병입니다. 그러나 성서에나병으로 번역한레프로스 λεπρός” 말은 현대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한센병 지칭하는 말이 아닙니다. 성서에서 모든악성 피부병 두루 사용된 말입니다. 레위기 13장과 14장에 나오는 나병에 관한 규례들은 모두 한센병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악성 피부병 관련된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성서 번역에서나병이라 특정하는 바람에 병이한센병으로 오인된 경우입니다. 아무튼 성서에서 언급된나병 오늘날의한센병 다른 모든악성 피부병이란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한센병 환자들에게는 죄송한 일이지만, 한글 성서의 번역에 따라나병이라 편의상 부르겠습니다.

 

성서에서나병 종교적 의미와 결부되어 사용됐습니다. 나병처럼 전염성이 강한 피부병은 마치 인간의 죄성과도 유사하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모든 관계성의 단절과 일상성을 파괴하는 인간의처럼, 전염성이 강한 피부병도 사람을 사람으로부터 격리하고, 모든 일상과 단절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 사람들은 나병이 사람의 때문에 발생한하느님의 형벌이라 생각했습니다. 한마디로 저주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나병에 걸린 사람은 모든 일상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격리됐습니다. 그들은 밖에서 살아야 했고, 사람들이 다가오면불결, 불결이라 소리를 쳐서 사람들이 피해 가도록 알려야 했습니다. 이러한 악성 피부병에 걸린 사람이 다시 공동체로 복귀하여 일상을 회복하려면 레위기 14장의 규정대로 사제에게 확인받고 규정에 맞는 제물을 바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제사 규정조차도 감당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어린 숫양 마리어린 암양 마리 바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바치는 제사가 바로속죄제입니다. 그러니 나병에서 나았다는 것은, 하느님의 저주에서 풀려났고, 하느님의 용서를 받았다는 뜻이지요.

 

오늘 명의 나병 환자들의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도 레위기 13, 14장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야기는 루가복음에만 기록된루가의 특수자료입니다. 명의 나병환자는 아마도 다수의 나병환자로 이해하면 좋을 같습니다. 다수의 나병환자 사람만 예수께 돌아와 감사를 했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치유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감사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는 루가복음 5장에 나오는나병환자 이야기와는 결이 조금 다릅니다. 물론 감사 치료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일상의 회복에 대한 감사이기도 합니다. 다른 다수의 사람은 속히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떠났지만, 사람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하는 수고를 했습니다. 말은 사람이 다시는 자신의 옛날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한 것이라 말할 있습니다. 그는 이제 예수가 없었던 과거의 일상이 아니라, 예수와 함께하는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을 치료하신 예수님의 말도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합니다. 루가복음 5장과 비교해 보면, 거기에서는 나병환자에게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치료의 행위에 이야기의 초점이 맞춰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는 평범한 유대인들의 일상대로, 레위기의 규례대로,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이는 치료 행위와는 특별한 관련이 없는 말입니다. 사제에게 가서 보이는 행위는 피부병이 나은 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말씀을 들었을 즉시 나병이 나은 상태는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이 사제에게 가는 동안 자연스럽게 조금씩 나아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라고 루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는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모두 생략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가는 동안에 그들이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는 시간이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과정이 너무나 평범해서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았다는 것조차 잊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치료의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으면, 다른 말로, 치료 행위가 기적처럼 특수한 행위로 보이지 않으면, 사람들은 치료 행위와 치료의 상관성을 금방 잊어버리게 됩니다. 특수함이 아닌 평범한 경험은 일상 속에 그냥 묻혀 사라집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치료의 과정을 하느님의 치료의 기적으로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오직 사람만 평범함과 일상에서 나병에서 치유된 것을 인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효과가 예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간증을 설교 시간에 잘하는 편이 아닌데, 오늘은 잠깐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저도 오늘 나병환자들처럼 너무나 자연스럽고 평범한 치료의 기적을 경험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대학생 기독대학생 여름수련회에 참석했는데, 그날 설교를 하셨던 어떤 목사님이 특별히 오늘은위장병 있는 사람이 치료받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는 제가 10년을 넘게십이지장궤양으로 고생할 때였습니다. 밀가루 음식만 먹으면 위통 때문에 속이 뒤집어져 고생할 정도로 증상이 심각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기에는 약을 달고 살았지요. 목사님의 말에 믿음은 가지 않았지만,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수줍음을 무릅쓰고 많은 사람 앞에서 손을 들고 일어났습니다. 아마도 열댓 정도 학생들이 함께 일어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목사님은 강대상에서 치료의 기도를 해주셨고 저는 자리에 서서 아무런 변화도 느꼈지만, 믿음 의심 반으로아멘 따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아무런 반응도, 아무런 감흥도 없었습니다. 몸에 특별한 변화도 느꼈습니다. 모든 것이 너무 평범했고, 예배는 매우 일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얼마 동안 사실을 잊고 지내다가 년이 지난 후에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밀가루 음식을 전혀 먹지 못하던 제가 어느 밀가루 음식을 먹고도 위장에 탈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저를 괴롭히던 통증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을 그때 인지했습니다.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서 아무런 감흥도 없이 고통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사진도 찍어보고 진찰했는데 의사가 깨끗하다고 진단을 해주더군요. 놀라운 일이지만, 아직도 그것이 목사님의 기도 덕분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우연히 치료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믿음으로 하느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치료 은총이 그렇게 일상적이고 평범한 경우도 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생각에 오늘 명의 나병환자도 그러한 경우가 아닐지 상상해 봅니다. 저는 목사님께 감사를 전하고 싶어도 그가 누구였는지, 이름도 얼굴도 이제 기억나지 않습니다.

 

사실 일상이 무너진 후에 사람들은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쉽게 복귀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전과똑같은일상의 회복은 불가능합니다. 이미 모든 조건과 상황들이 개인마다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경험이 일상의 붕괴 속에서 인간 개인에게 다른 차원으로 변화를 불러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부부싸움을 때마다 부부는 조금씩 일상의 변화를 겪게 됩니다. 다만 변화가 천천히 조금씩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부부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분명 시간과 새로운 경험은 사람의 인격을 바꿔놓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오지 않은 나병환자들은 과연 자신의 일상으로 완전히 복귀했을까요? 우리가 코로나를 3 동안 경험한 후에 우리의 일상이 이전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도 예전보다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고, 자주 손을 씻는 습관도 달라진 중의 하나입니다. 위생에 대해 이전보다 예민해지기도 했지요. 특히 무엇보다 누구를 만나든 만남의 소중함이 예전보다 귀해진 것은 긍정적 변화 하나인 같습니다.

 

한번 무너진 일상이 새로운 일상으로 거듭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른 나병환자들은 예수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예수와 함께하는 일상을 앞으로 살게 것입니다. 그는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 자신의 새로운 일상이 어떻게 예수와 관련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것이 오늘 이야기가 주는 감사와 예수와 함께하는 일상의 시작입니다. 핵심이감사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아는 사람은 것에도 감사할 압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아는 사람은 일상의 작은 변화도 감지할 있습니다. 작은 것에 감사할 아는 사람은 일상의 평범함 속에서 더욱 감사할 일이 많아집니다. 감사가 그의 일상을 평범함에서 조금씩 특별함으로 만들어 갑니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 매일 마시는 공기와 물에 대한 감사, 아름다운 하늘과 풀잎, 나무들에 대한 감사, 가족의 무병 무탈함에 대한 감사감사를 버릇하면 감사의 이야기가 넘쳐납니다. 감사가 넘치는 일상은 이전의 일상과는 다른 모습일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해의 마지막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졌던 지난 평범한 일상에 감사하길 바랍니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낸 우리가 대견합니다. 지난 베풀어주신 많은 감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서 나오기를 바랍니다. 평범한 일상에 감사를 더함으로써, 예수님과 함께하는 일상을 만들어가시길 바랍니다. 사람의 나병환자처럼 돌이켜 감사할 있는 마음. 그것이 일상에 대한 애정과 소소한 것들에 대한 감사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러한 은총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길 간절히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28 (다해) 1

 

본기도

하느님, 주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좋은 것으로 채워 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일에 감사하며, 언제나 주님의 풍성한 은총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예레 29:1, 4-7

1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사로잡아 장로들을 비롯하여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백성에게 예언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편지를 띄운 일이 있었다.
4 만군의 야훼가 이스라엘의 하느님으로서 예루살렘에서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모든 사람에게 말한다. 5 너희는 거기에서 집을 짓고 살아라. 과수원을 새로 마련하고 과일을 따먹으며 살아라. 6 장가들어 아들딸을 낳고 며느리와 사위를 삼아 손자 손녀를 보아라. 인구가 줄어서는 된다. 불어나야 한다. 7 나에게 쫓겨 사로잡혀 사는 나라가 잘되도록 힘쓰며 잘되기를 나에게 빌어라 나라가 잘되어야 너희도 잘될 것이다. …”

 

 

 

성시_시편 66:1-12

1,2 땅은 하느님을 환호하여라,
.     존귀하신 이름을 노래하고
.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어라.
3    이렇게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   “당신은 두려우신 , 하신 놀랍습니다.
  당신의 , 크신 능력을 보고
.     원수들이 무릎 꿇습니다.
4    세상이 당신 앞에 엎드리고 당신을 찬양합니다,
.     당신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5    오라, 와서 보아라.
.     하느님 하신 일들을
.     인간에게는 엄청나고 두려운 일들을,
6    바다를 단단한 땅으로 바꾸셨고,
.     사람들을 걸어서 건너게 하셨다.
.     그러기에, 우리의 기쁨은 그분 안에 있다.
7    그분은 영원한 힘의 통치자,
.      눈은 만방을 내려다보시고 살피시니
.     아무도 머리 들어 반역하지 못하리라.
8    민족들아, 우리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     소리 높여 찬양하여라.
9    실족하여 죽을세라, 염려해주시며
.     우리의 목숨을 되살려주셨다.
10  하느님, 주께서는 은을 풀무 불에 시금하듯이
.     우리를 시련하셨지만
11  우리를 그물에 몰아 넣으셨으며
.     무거운 짐을 등에 지우셨지만
12  남에게 머리를 짓밟히게 하셨으며,
.     불과 물속을 지나가게 하셨지만
.     마침내는 돌리게 건져주셨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2디모 2:8-15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시오. 그분은 다윗의 후손이며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분이십니다. 내가 전한 복음이 바로 이것입니다. 9 나는 복음을 위해서 고통을 당하고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닙니다. 10 그러므로 나는 하느님께서 뽑으신 사람들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구원과 영원한 영광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참고 있습니다.
11우리가 그분과 함께 죽었으니
.     그분과 함께 것이고
12  우리가 끝까지 참고 견디면
.     그분과 함께 다스리게 것이다.
.     우리가 그분을 모른다고 하면
.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이다.
13  우리는 진실하지 못해도
.     그분은 언제나 진실하시니
.     약속을 어길 모르시는 분이시다.”
.     이것은 믿을 만한 말씀입니다.
14 다음과 같은 것을 신도들에게 깨우쳐주시오. 말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지 말라고 하느님 앞에서 엄숙히 명령하시오. 그것은 아무런 이익이 없을 아니라 듣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15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부끄러울 없는 일꾼으로서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시오.

 

 

 

복음서_루가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다가 나병환자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13예수 선생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크게 소리쳤다. 14 예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가서 사제들에게 너희의 몸을 보여라.” 하셨다. 그들이 사제들에게 가는 동안에 그들의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들  사람은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예수께 돌아와 16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이것을 보시고 예수께서는몸이 깨끗해진 사람은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 갔느냐? 18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러 돌아온 사람은 이방인  사람밖에 없단 말이냐!” 하시면서 19 그에게일어나 가거라. 믿음이 너를 살렸다.” 하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