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10.26. 다해_연중30주일
요엘 2:23-3:5 / 시편 65 / 2디모 4:6-8, 16-18 / 루가 18:9-14
“자기 이해와 회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요즘 계속해서 루가의 특수자료 예화들을 주일에 읽고 있는데 오늘도 그중 하나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대비되는 두 부류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는 의인이라 자처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 죄인으로 취급받던 “세리”입니다. 우리는 오늘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는 사람”과 “스스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인간의 자기 이해에 대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자기 이해”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스스로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탐색하는 심리적 기제입니다. 이러한 자기 이해를 통해 인간은 성장 과정에서 감정과 생각, 행동, 세계관, 욕망 등이 결정됩니다. 칼 바르트는 이러한 인간의 자기 이해에 대해 “인간은 자신의 그릇됨에 대한 지식에서조차 그릇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은 죄 된 인간이고, 죄가 무엇이고, 죄가 인간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이 성서가 말하는 “자기 이해”의 과정입니다.
바리사이파는 예수님 당시에 엣세네파, 사두가이파, 열혈당원 등과 함께 대표적인 유대교 종파였습니다. 평신도로 구성된 이 종파는 예수님 당시에 약 6,000명 정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종파는 B.C. 167년에 시작된 유대교 독립전쟁에 가담했던 “경건자들, 즉 하시딤” 가운데 묵시문학적 사상을 반대하던 사람들에 의해 결성된 종파입니다. 이들은 구약성서뿐만 아니라 조상의 전통 또한 중요시했고, 특히 율법 규정과 정결법을 철저히 지킨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러한 바리사이파 중에 율법을 전공한 사람들이 바로 “바리사이파 율사”입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을 스스로 거룩하게 여겼으며, 반대로 자기네처럼 살지 않는 “가난한 사람들, 즉 암 하레츠(עם הארץ)”를 매우 천하게 여겨 멸시했습니다. 고아나 과부, 병자, 세리들이 이에 해당합니다. 세리를 제외하면 이들이 모두 돌봄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인데도 말입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단식하는 데 비해서 바리사이는 일주일에 두 번, 즉,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습니다. 그리고 일반 유대인들은 일 년에 한 번 추수한 농산물 소출의 십분의 일을 십일조로 바쳤지만, 바리사이는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심지어 장터에서 물건을 살 때 생산자가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을 것을 가정하여 물건 값의 십분의 일도 바쳤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조차 바리사이보다 더 의롭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오 5:20)고까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위선적인 마음은 닮지 말되, 그들의 경건한 행위는 본받으라는 말씀이지요.
다음은 세리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세리는 요즘과 같이 정부에서 고용한 국세청 직원이 아닙니다. 세금징수원인 세리는 당시 지방세였던 “관세”를 거두어들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갈릴래아 지방에서는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에게 세금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금 징수 관리를 둔 것이 아니라 민간인에게 세관별로 임차료를 받고 일정 기간 계약에 의해 세금징수권을 빌려준 것입니다. 그러니 민간인이었던 세리는 헤로데에게 줄 임대료를 제외하고, 자신의 이익까지 덧붙여야 했으니 당연히 세금을 착복했던 것입니다. 헤로데 정부는 임대료만 꼬박 잘 받으면 세리들이 얼마를 착복하든 상관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세리들은 같은 민족의 피를 빨아먹는 나쁜 사람들로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직업상 이방인들과 자주 접촉했기 때문에 정결례를 중시하던 바리사이에게는 가장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는 그들을 죄인 취급하여 멸시했습니다. 당시 세리 중에서 유대교를 제대로 믿으려고 한다면 “세리직”을 포기해야만 가능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는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는 천민 취급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은 오늘 이야기의 두 사람의 모습에서도 도드라지게 나타납니다. 당당하게 성전에서 기도하는 바리사이의 모습과 멀찍이 서서 고개도 못 들고 기도하는 세리의 모습이 매우 대조적입니다. 루가는 이 예수님의 예화를 “자기를 스스로 높이는 사람”과 “자기를 스스로 낮추는 사람”의 대비로 해석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각각 자기 이해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뜻입니다. 바리사이나 세리나 결국 사회적으로 정의된 자기 인식, 그리고 자기 스스로 만든 자기 인식으로 각각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미 바리사이는 자신이 “바리사이파”에 소속됐다는 것으로 우월의식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바리사이 종파의 관례대로 금식도 하고, 정결례도 철저히 지키며 율법과 전통대로 살았습니다. 그런 사람이니 자신도 자신이 대단하고 거룩하다고 느꼈을 겁니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는 데에는 어떠한 자기반성도, 또 하느님도 개입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속과 출신, 자신의 행위, 그리고 자신의 사회적 신분에 의해 자기 인식에 도달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자칭 의인이었고,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던 “소유형 인간”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자기 이해는 자기 자신을 의식하는 데도 객관성이 없고 편향된 경향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칼 바르트는 “인간을 바로 알기 위해 자기 자신에만 집중하는 것도 부정확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자기 이해는 매우 상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세리 또한 바리사이와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또한 “세리”라는 사회적 통념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이해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지만, 그는 자기 민족으로부터, 그리고 유대교로부터 소외된 자기 이해가 있었습니다. 이미 그의 자기 인식에는 사회적 편견이 작동했고, 그것은 그를 자기 연민에 빠지게 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당당하게 다른 유대인처럼 성전 안뜰로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이 두려웠던 것이지요. 한마디로 자격지심에 빠졌습니다. 이를 보면 그 또한 바리사이처럼 사회적으로 정의된 자기 이해에 도달한 사람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바리사이와 다른 한 가지는 그 자신이 스스로 “죄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기 민족을 배반하고 사람들을 등쳐먹는 세금을 징수하는 행위가 나쁜 것을 알면서도 그는 직업상 그것을 벗어날 수도 없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습니다. 그러한 죄를 벗으려면 그 직업을 버려야 했지만, 그는 배운 것이 그것뿐이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의 직업은 그의 신앙적 양심과 늘 대치됐습니다. 사회적 편견과 질시를 받는 것에 더해서 그는 자기 자신도 자신을 책망하는 죄책감 속에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이중으로 고통받은 것이지요. 그래서 그가 도달한 다른 내면적 자기 이해는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함과 동시에 하느님의 자비에 자신을 의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자신보다 더 자기를 잘 이해해 주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던 자기 이해를 내려놓고, 타인의 판단을 넘어서 오직 하느님의 판단과 자비에 자신을 의탁했습니다. 그것은 그를 그동안 괴롭혔던 이중적 자기 이해에서 벗어나고자 한 그의 절박한 심정이 반영된 것입니다.
루가복음 사가는 이러한 세리가 바로 “자기 자신을 낮춘 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자신의 처지와 한계를 알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바로 아는 사람. 그러한 사람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칼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은 죄가 신을 죽이고, 형제를 살해하고, 자기를 죽이는 순수한 형태로 우리와 만난다”라고 말했습니다. 즉 그리스도는 우리가 우리의 죄 됨을 알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죄의 넓이와 무게에 대한 이해”를 가져옵니다. 그것은 철저히 인간의 관점이 아니라 성서의 관점이며, 하느님의 관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죄인”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자랑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루가복음 5장 32절은 주님께서 오신 목적이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바로 그러한 죄인들의 것임을 선포하신 것이지요. 나면서부터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은 천진한 어린아이까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참 억울하게 들리고 부조리하게 들리는 말입니다. 그러나 “죄”는 이미 인간 실존 안에 내재해 있음을 성서는 말합니다. 그것은 예정론도 아니고 운명론도 아닙니다. 성서가 보는 인간 실존에 속하는 부분입니다. 실존주의에서 이를 “부조리”라 표현했고, 불교에서는 이를 “업보”라고 표현했지만, 그리스도교는 이를 “죄”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죄는 인간 실존에 주어진 지을 수 없는 흉터처럼 아담에서부터 모든 인간에게 새겨진 흔적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죄가 인간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은혜와 자비의 통로가 된다고 성서는 말합니다. 이렇게 오늘 세리처럼 자신이 죄인임을 아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요아킴 예레미야스는 “하느님 앞에서 빈털터리들”이라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서에서 확인하는바 예수님 당시에 “죄인”으로 불렸던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바리사이도, 세리도 결국 모두 죄인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스스로 죄인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하느님의 자비 앞에 놓이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종교적 실천과 영적인 성장을 통해 자기가 의롭다는 자기 이해가 있다고 해도, 결국 우리는 오늘 읽은 이야기처럼 바리사이의 의를 넘어서지는 못할 겁니다. 우리가 자기 의를 자랑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 안에 완전히 침잠되지 않으면 우리는 좀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교만해지는 부정확한 자기 이해를 떠나 우리는 철저하게 “하느님 자비의 시선”으로 자신을 비춰봐야 합니다. 최소한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던 세리처럼, 우리가 죄인임을 스스로 인식하는 것. 그것은 분명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윤리적, 법률적 죄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윤리적이고 법률적으로 위법하지 않으면 자신이 죄가 없다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가 말하는 죄는 “하마르티아(ἁμαρτία)”입니다. 이는 “표적을 빗나가다”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뜻에서 어긋난 모든 것을 뜻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 모든 것이 결국 “죄”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활이나 총의 영점을 조절하는 것과 같이 우리를 죄로부터 정확하게 하느님께로 향하게 합니다. 우리의 자유 의지를 온전히 하느님의 의지에 내어놓을 때 진정한 회개가 가능합니다. 뭔가 잘못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돌아설 때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오늘 세리처럼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라는 기도로 하느님께 무릎을 꿇게 됩니다.
이제 영적인 전례력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우리의 지난 삶을 돌아보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대림절, 기다림의 시간을 맞이했으면 좋겠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며 자기의 의를 강조했지만, 금식의 본래 의미는 회개를 위한 것이지 남에게 경건을 자랑하기 위함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회개는 하느님 앞에 자기 실존의 방향을 바르게 세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는 그분의 자비가 무엇인지를 확실히 아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자비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반응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게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라고 주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묵상한 대로 세상적으로는 부유했지만, 하느님 앞에서는 완전히 “빈털터리”였던 세리를 칭찬하셨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총으로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연중30주 (다해) 1
본기도
주 하느님,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을 살피시며 허물을 다 아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모든 탐욕과 집착을 버리고 겸손히 주님을 따라 삶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요엘 2:23-3:5
23 시온의 자녀들아,
. 야훼 너희 하느님께 감사하여
. 기뻐 뛰어라.
. 너희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흠뻑 주시고
. 겨울비도 내려주시고
. 봄비도 전처럼 내려주시리니,
24 타작 마당에는 곡식이 그득그득 쌓이고
. 독마다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라.
25“나 너희에게 갚아주리라.
. 너희에게 보냈던 대군,
. 메뚜기, 누리, 황충이, 풀무치가 먹어 치운 햇수를 세어
. 갚아주리라.
26 이제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으며
. 너희 하느님 야훼를 찬양하리라.
.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이루어준
. 이 하느님을 찬양하리라.
. 내 백성은 언제까지나 당당하리라.
27 그제야 너희는 알리라.
.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다는 것을.
. 너희 하느님은 이 야훼밖에 없다.
. 내 백성은 언제까지나 당당하리라.”
. 만민에게 하느님의 영이 내리리라
3:1(28)“그런 다음에 나는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 너희의 아들과 딸은 예언을 하리라.
. 늙은이들은 꿈을 꾸고,
.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리라.
2(29) 그 날, 나는
. 남녀 종들에게도 나의 영을 부어주리라.
3(30) 나는 하늘과 땅에서 징조를 보이리라.
. 피가 흐르고 불길이 일고 연기가 기둥처럼 솟고
4(31) 해는 빛을 잃고
. 달은 피같이 붉어지리라.”
. 야훼께서 거둥하시는 날,
. 그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이런 일이 있으리라.
5(32) 그 때 야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마다 구원을 받으리라.
.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 시온 산에는 난을 면한 사람이 있으리라,
. 예루살렘에는 야훼께서 부르신 사람이 살아 남으리라.
라틴어 성서는 본문 번호가 다릅니다. 4:1에서 3:1이 시작됩니다.
성시_시편 65
1 하느님,
. 시온에서 찬미 받으심이 마땅하오니 〇
. 당신께 바친 서원 이루어지게 하소서.
2 당신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〇
. 죄지은 모든 사람 당신께 나아가 고백하오니,
3 우리가 지은 죄 힘겹도록 무거우나 〇
. 당신은 그것을 씻어주십니다.
4 복되어라,
. 당신께 뽑혀 한 식구 된 사람, 〇
. 당신 궁정에서 살게 되었으니,
¶ 당신의 집, 당신의 거룩한 성전에서 〇
. 우리도 마음껏 복을 누리고 싶습니다.
5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느님,
. 놀라운 기적으로 정의를 세우시고,
. 우리 소원 들어주시니 〇
. 땅끝까지 먼 바다 끝까지 사람들의 소망입니다.
6 그 크신 힘으로 산들의 뿌리를 박으셨으며 〇
. 권능의 띠를 허리에 질끈 동이시고
7 설레는 바다와 술렁이는 물결 〇
. 설치는 부족들을 가라앉히셨습니다.
8 땅끝에 사는 사람들이 당신의 손길을 보고 놀라며 〇
. 해 뜨는 데서 일으키신 노랫소리,
. 해 지는 곳에 메아리칩니다.
9 하느님은 이 땅을 찾아오시어, 〇
. 비를 내리시고 풍년을 주셨습니다.
¶ 손수 파 놓으신 물길에서,
. 물이 넘치게 하시어 〇
. 이렇게 오곡을 마련해주셨습니다.
10 밭이랑에 물 대시고,
. 흙덩이를 주무르시고
. 비를 쏟아 땅을 흠뻑 적신 다음 〇
. 움트는 새싹에 복을 내리십니다.
11 이렇둣이 복을 내려 한 해를 장식하시니 〇
. 당신 수레 지나는 데마다 기름이 철철 흐릅니다.
12 광야의 목장에도 기름기 흐르고 〇
. 언덕마다 즐거움에 휩싸였습니다.
13 풀밭마다 양떼로 덮이고,
. 골짜기마다 밀 곡식이 깔렸으니 〇
. 노랫소리 드높이 모두 흥겹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2디모 4:6-8, 16-18
6 나는 이미 피를 부어서 희생제물이 될 준비를 갖추었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날 때가 왔습니다. 7 나는 훌륭하게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정의의 월계관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날에 정의의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월계관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6 내가 처음으로 재판정에 나갔을 때에 한 사람도 나를 도와주지 않고 모두가 버리고 가버렸습니다. 그러나 나를 버리고 간 그들이 엄한 벌을 받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17 주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며 나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완전히 선포할 수 있었고 그 말씀이 모든 이방인들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께서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해 주셨습니다. 18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한 자들에게서 건져내어 구원하셔서 당신의 하늘 나라로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 무궁토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서_루가 18:9-14
9 예수께서는 자기네만 옳은 줄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들에게 이런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는데 하나는 바리사이파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세리였다. 11 바리사이파 사람은 보라는 듯이 서서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욕심이 많거나 부정직하거나 음탕하지 않을 뿐더러 세리와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12 저는 일 주일에 두 번이나 단식하고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칩니다.’ 하고 기도하였다. 13 한편 세리는 멀찍이 서서 감히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14 잘 들어라. 하느님께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바리사이파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 세리였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면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면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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