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11.2. 다해_모든 성인의 날_연중31주일
요엘 2:23-3:5 / 시편 65 / 2디모 4:6-8, 16-18 / 루가 18:9-14
“성인(聖人)다움의 가능성”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그리스도인도 고난을 당한다.”
교부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말입니다. 이런 말을 기뻐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고 교회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하느님의 위로나 은총 또는 마음의 평화를 기대하기 때문이지요. 그것 외에도 나름대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서는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전복시키는 말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가난해지고 싶지 않은데,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울고 싶지 않은데, 오히려 “우는 자”가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칭찬과 대접받고 싶은데, 예수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받고 억울하게 욕을 받으면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그리스도의 제자도를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해당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뿐만 아니라 복음서를 유심히 읽어보면 복음서가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과는 전혀 다른 차원을 말씀하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도 예수 때문에 사람들에게 핍박이나 안 좋은 소리를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것을 이웃 사랑 또는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멋지게 포장을 잘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세상 속에서 전혀 그리스도인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취미 생활을 하는 사람들처럼, 불편한 것은 모두 배제하고, 자신에게 좋은 것만을 취사선택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듯합니다. 그러니 현대의 그리스도인은 아마도 절대로 박해나 핍박받을 일은 없을 듯합니다. 만약 그러한 박해의 시대가 도래하면 과연 몇이나 교회를 지킬 수 있을까요? 모두가 침묵하는 얘기지만, 일제 강점기 때 대부분의 교회가 신사참배를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습니다. 물론 “주기철 목사” 등과 같은 많은 그리스도인이 저항했지만, 일본의 탄압하에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국민의례”로 둔갑해 교회에서 행해졌습니다. 과연 일본 천황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교회 보존을 위한 하나의 지혜였을까요, 아니면 세속적 타협이었을까요, 아니면 우상숭배였을까요? 그것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는 한국 교회는 다시 박해의 시대가 도래하면 아마도 예전의 모습을 반복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미 그리스도교는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잃고 영적인 취미생활처럼 되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오늘 루가복음을 통해 선포된 “평지설교”는 우리의 현재의 신앙과 큰 괴리를 보입니다.
루가는 마태오복음의 아홉 가지 행복선언과는 달리, 예수님의 메시지를 네 가지의 행복선언으로 압축하고, 네 가지의 불행선언을 추가해서 정리했습니다. “예수 어록”이 출처인 이 말씀은 행복선언의 처음 세 가지가 원본에 가까운 “예수님의 삼중행복선언”이고, 나머지 네 번째 것은 가필일 가능성이 큽니다. 앞의 세 가지는 “운문”이고, 네 번째 것은 “산문”이라 문체도 다릅니다. 이러한 표현은 가난하고 굶주리고 우는 사람들이 지금의 처지는 비참하지만, 종국에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면 그 처지가 완전히 뒤바뀔 것을 약속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불행선언 네 가지가 나오고, 마지막은 단절어 집성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단절어 집성문을 요약하면 “원수 사랑, 보복 금지, 황금률, 자비행” 등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곧이곧대로 실천하기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요한복음 1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대사제의 하인이 뺨을 쳤을 때, 다른 뺨을 내놓지 않으시고, 항의를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또는 상황논리적으로 해석하려 하지 말고, 구약에서 말하는 “동태복수법”에 대한 “반복수법(反復讐法)”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정양모). 이웃에게 복수를 하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이 결국 이웃 사랑의 시발점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이러한 말씀에 순종한 사람들이나, 신앙을 지키다 순교한 사람들을 “성인(聖人)”이라 칭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 성인 숭배의 시작이 초기 교회의 순교자들의 시신을 정중하게 다루는 방식에서 출발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인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살았던 “신앙의 모범”이 되는 사람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모든 성인의 날”을 기념하는 이유는 축일로 지정된 성인들을 포함하여, 예수님의 산상설교와 평지설교에 언급된 가르침대로 살았던 모든 이름 모를 성인들까지 포함하여 그들을 기리고 그들의 삶을 모범삼자는 데 그 의의가 있습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성인들은 우리와 똑같은 몸과 성정(性情)을 가진 인간이었기에 우리가 더 친근하게 그들을 신앙의 모범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탐욕을 부리지 않습니다. “우는 사람”은 거만하지도 않고 온유합니다. “슬퍼하는 사람”은 겸손합니다. 그리고 “자비로운 사람”은 자기의 것을 내어줍니다.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이러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절제, 정의, 신중, 인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러므로 절제에는 순결한 마음과 정신이, 정의에는 자비가, 신중에는 평화가, 인내에는 온유함이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덕목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 그중 한 가지 덕목만 가져도, 상호 연쇄적으로 작용하여 사람이 성인다워진다고 합니다. 한 마디로 이러한 덕목이 바로 성인들이 지닌 덕목이란 것이지요. 하나의 덕목을 배가하면 다른 덕목도 차례대로 따라서 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말씀의 실천은 아주 부분적인 덕목에서 하나씩 실천하여 전체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요즘 여러 이유로 PT를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헬스장에 가서 모든 기구를 처음부터 다 잘할 수는 없습니다. 트레이너의 가르침대로 기구들을 한 가지씩 몸에 적응시키고 익숙해지면 단계적으로 더 고난도의 어려운 운동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몸을 위한 운동도 이렇게 체계적인 성장을 필요로 하는데, 하물며 영적인 덕을 키우는 것은 더더욱 체계적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원수 사랑은 먼저 남에 대한 미움과 복수의 마음을 버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용서가 가능해지고, 언젠가는 원수도 사랑할 수 있는 성숙함으로 나아가게 되겠지요. 인도 콜카타의 마더 테레사도 “ 단 한 사람, 한 사람씩” 사랑하는 데서 시작하여 결국 4만 2천 명의 사람을 돌볼 수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녀는 한 번에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 앞에 보이는 “단 한 사람”부터 하나씩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절제에서 신중함이, 신중함에서 인내가, 인내에서 온유함이, 온유함에서 정의가, 정의에서 결국은 이웃 사랑이 실현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결국은 한 개인의 순결한 마음과 정신에서 비롯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로부터 시작해서 가정으로, 가정에서 직장으로, 직장에서 사회로 차츰 덕의 폭이 넓어져 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성인”은 될 수 없다 치더라도, “성인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조정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래를 향해 열린 우리의 가능성이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이 지시하는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서 말씀은 이러한 차원에서 우리가 예수님의 가르침과 얼마나 동떨어져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바로미터”입니다. 나의 삶이 원수를 사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며 살고 있는지, 자신 안에 숨겨진 모든 타자에 대한 경계심과 무심함은 없는지 하나씩 돌아보게 만듭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괴롭히려고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평지설교”의 가르침은 율법도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의 방향을 하느님께서 제안하신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의지나 행동이 성격과 정서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의지와 태도를 어떤 방향으로 가져가고 성장시키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도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성인다움”을 지닐 가능성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모든 성인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추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오늘 그러한 방향성과 가능성이 우리 안에 있음을 확신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게 되길 바랍니다. 이 말씀이 그대로 우리 안에서 체화되어 “성인(聖人)다움”을 배우는 우리가 되길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11.1. 모든 성인의 날 (다해)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인들의 믿음과 헌신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도 앞서간 모든 성인들의 거룩한 삶을 본받아 주님의 진리를 이 세상에 증거하고, 마지막 날에 성인들과 더불어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다니 7:1-3, 15-18
1 바빌론 왕 벨사살 제일년, 다니엘은 잠자리에 들었다가 꿈에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그는 그 꿈을 적어두었는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2 “다니엘이 말한다. 나는 밤에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하늘 끝 사방에서 갑자기 바람이 일면서 큰 바다가 출렁거리는데, 3 바다에서 모양이 다른 큰 짐승 네 마리가 올라왔다. …
15 나 다니엘은 마음이 어수선했다. 그 이상한 광경이 머리를 어지럽게 하였다. 16 그래서 거기 서 있는 한 분에게 가서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고 물었더니 그가 이렇게 설명해 주었다. 17 ‘이 큰 짐승 네 마리는 세상 나라의 네 임금을 가리키는데 18 마침내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섬기는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물려받아 길이 그 나라를 차지하고 영원토록 이어 나가리라는 뜻이다.’
성시_시편 149
1 알렐루야!
. 주님께 새 노래를 불러라. ◯
. 신도들아, 모여서 그를 찬양하여라.
2 이스라엘아,
. 너를 내신 분을 모시고 기뻐하여라. ◯
. 시온 시민들아,
. 너희 임금님을 모시고 즐거워하여라.
3 춤을 추며 그의 이름 찬양하여라. ◯
. 북치고 수금 타며 노래하여라.
4 주께서 당신 백성 반기시고 ◯
. 짓눌린 자들에게 승리의 영광 주셨다.
5 신도들아, 승리의 찬치 벌여라. ◯
. 밤에도 손뼉 치며 노래하여라.
6 목청 높여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
. 주님은 손에 쌍날칼을 드시고
7 뭇 민족에게 원수를 갚으시며 ◯
. 뭇 나라에게 벌을 주시고
8 왕들에게 고랑 채우시며 ◯
. 권세 있는 자들을 사슬로 묶고
9 이미 내린 선고대로 그들을 처형하시니, ◯
. 하느님을 믿는 온 신도들의 영광이로다.
.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에페 1:11-23
11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12 그러므로 맨 먼저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14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15 나는 여러분이 주 예수를 충실히 믿으며 모든 성도들을 사랑한다는 소식을 듣고 16 기도할 때마다 언제나 여러분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17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영광스러운 아버지께서 여러분에게 영적인 지혜와 통찰력을 내려주셔서 하느님을 참으로 알게 하시고 18 또 여러분의 마음의 눈을 밝혀주셔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여러분이 무엇을 바랄 것인지 또 성도들과 함께 여러분이 물려받을 축복이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인지를 알게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9 그리고 우리 믿는 사람들 속에서 강한 힘으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여러분에게 알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20 하느님께서는 그 능력을 떨치시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려내시고 하늘 나라에 불러 올리셔서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시편 110:1) 21 권세와 세력과 능력과 주권의 여러 천신들을 지배하게 하시고 또 현세와 내세의 모든 권력자들 위에 올려놓으셨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굴복시키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시편 8:6).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만물을 완성하시는 분의 계획이 그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복음서_루가 6:20-31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21 지금 굶주린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 너희가 배부르게 될 것이다.
⋅ 지금 우는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 너희가 웃게 될 것이다.
22 사람의 아들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움을 사고 내어쫓기고
⋅ 욕을 먹고 누명을 쓰면 너희는 행복하다.
23 그럴 때에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 하늘에서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4 그러나 부요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 너희는 이미 받을 위로를 다 받았다.
25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 너희가 굶주릴 날이 올 것이다.
⋅ 지금 웃고 지내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 너희가 슬퍼하며 울 날이 올 것이다.
26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는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
⋅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27 “그러나 이제 내 말을 듣는 사람들아, 잘 들어라.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해 주고 28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해 주어라. 그리고 너희를 학대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주어라. 29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 주고 누가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주어라. 30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빼앗는 사람에게는 되받으려고 하지 마라. 31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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