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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목소리”_2025.12. 7. 가해_대림2주일

James Chae 2025. 12. 7. 07:52

 

2025.12. 7. 가해_대림2주일

이사 11:1-10 / 시편 72:1-7, 18-19 / 로마 15:4-13 / 마태 3:1-12

 

 

목소리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야훼의 목소리는 힘차시고 야훼의 목소리는 위엄이 넘친다. 야훼의 목소리에 송백이 쩌개지고 레바논의 송백이 갈라진다.” 시편 29:4~6

 

야훼 신앙은 하느님의 형상은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대신 하느님의 음성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형상이나, 하느님의 음성이나 모두 물질적인 것으로 초월적인 하느님께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입니다. 방금 읽어드린 시편에서도 야훼의 목소리가 위엄 있고, 힘찬 사람의 모습으로 의인화되어 있습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인간처럼 입과 목소리가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목소리이든, 눈에 보이는 형상이든 모두 인간적인 범주에 속하는 표현들입니다. 그리고 둘은 모두 어떤 이미지로 우리에게 인식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형상은 매우 직접적이고 가시적입니다. 이에 반해 음성은 간접적이며 가시적이지 않습니다. 시각적인 형상과 이미지는 정보를 전달하는 매우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면이 있지만, 상상력이 작동할 여지가 좁아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어떤 이미지를 직접 보기 전에는 인간은 무한한 상상을 있지만, 현상이나 이미지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상상력의 여지는 줄어들게 됩니다. 달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옛사람들의 상상력은 우주인 암스트롱이 달을 밟는 순간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최소한 달과 관련된 인류의 모든 이야기와 상상력이 과학의 실증주의 앞에서 모두 전설이나 신화로 전락한 것이지요.

 

그러나 눈으로 확인 불가능한 목소리는 청각적 인지과정을 통해 뇌에서 인지되기 때문에 무한한 이미지 생성에 작용합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전화로만 통화를 때와 직접 만나 대면할 때는 분명 사람에 대한 정보 인식에 차이가 있습니다. 목소리만 들을 때와 눈으로 상대의 얼굴 때는 분명 상대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사과를 전혀 보지 못한 사람은 사과에 대해 다양한 이미지를 상상하게 되지만, 사과를 직접 눈으로 순간 상상의 여지는 줄어듭니다. 청각과 시각의 경험이 이렇게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낯선 곳으로 여행할 , 사실 가기 전의 설렘과 기대가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할 때랑 다른 것을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형상이 없는 목소리는 다양한 이미지를 청각 신호만으로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외국어는 귀로 공부하는 것이지 눈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문자와 같은 시각적 텍스트 이미지로 외국어를 공부하면 듣는 기능이 떨어져서 결국 말하는 것도 서툴게 되기 때문입니다. 듣는 사람이 결국은 말하게 마련입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혀나 입의 문제가 아니라 청각에 문제가 있어서 말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듣지 못하니 말할 없게 거죠. 이런 차원에서 현대 사회는 청각적인 정보보다는 매우 시각적인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인터넷의 정보들은 사진 이미지 또는 텍스트 이미지가 대부분입니다. 인스타그램은 텍스트보다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중심이 되는 SNS입니다. 구구절절 텍스트에 의존하던 블로그랑은 완전히 다른 플랫폼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요즘은 TV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시각적인 자막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출연자들의 목소리만으로 정보를 전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청각보다는 시각적 기능에 의존하게 됩니다. 청각과 밀접하게 연관된 우리의 상상력과 영적인 것에는 점점 둔감해지고 있습니다.

 

오늘광야의 외침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청각적 이미지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사야서 40장에 예언된 광야의 소리 바로 자기라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의 외형적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시각적인 접근은 우상숭배로 이어질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야훼를 황금송아지로 형상화한 사건은 이러한 위험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우리는 현혹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궁궐이나 귀족들이 입는 화려한 복장이 아니라 낙타 털옷을 입고, 호화롭고 편리한 곳이 아니라 삭막한 광야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는 시각적으로는 전혀 사람들에게 권위를 보여줄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허물고 자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 목소리로 남기를 원했습니다. 바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목소리.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목소리로 남고 싶었던 것입니다. 목소리는 입에서 발화된 순간 사라집니다. 그래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만이 목소리를 붙들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있습니다. 그림이나 이미지는 소유할 있고, 우리의 뇌에 시각적 이미지로 기억되지만, 목소리는 마음으로 기억됩니다. 그것은 공상이 아니라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이러한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는 정확하게 구약의 야훼의 목소리와 신약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목소리와 연결고리가 됩니다. 

 

오늘 읽은 복음서에서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는 표현에서 소리에 해당하는 헬라어는포네φωνή”라고 합니다. “소리, 음성 뜻하는 말은기쁜 소식 연관된 말입니다. 이는 신약에서 무려 139번이나 사용됐습니다. 그만큼소리 통한 하느님의 현존 체험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포네라는 단어가 성서에서 어떻게 사용됐는지를 묵상하며,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와 관계하시고 말씀하시는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창세기부터 구약 전반에 걸쳐서 구약의 하느님은 목소리 사람들과 관계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이러한 목소리가 천상의 계시를 나타낼 주로 사용됐습니다.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때도이는 사랑하는 아들,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는 소리가 하늘로부터 들려왔다고 기록됐습니다. 이러한 동일한 음성이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변모하실 때도 동일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2장에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자기 죽음을 예고한 순간 하늘로부터내가 이미 영광을 드러냈고, 앞으로도 드러내리라.”(요한 12:28)라는 음성이 들려왔고, 대중은 이를 천둥소리로 착각했습니다. 이러한 하늘로부터 하느님의 목소리는 모두 예수님의 정체성과 그분의 사명을 드러내는 기능을 담당했습니다. 이는 모두 구약의 계시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야훼께서 인간과 관계하실 , 시각적 이미지보다는 이러한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내심을 있습니다. 이러한 소리는 정확하게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표징이고, 계시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하느님의 약속의 확증입니다.

 

포네 사용된 다른 경우는 바로 성령의 활동과 관련합니다. 사도행전 2 2절에는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임하시는 순간 모두외국어 말했다고 합니다. 성령의 임재를 소리로 표상화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흥미롭게도 베드로가 처음에는 시각적 환상을 경험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구약이 금지한 온갖 부정한 짐승들이 담긴 보자기 관련된 이미지입니다. 그러나 시각적 이미지로는 도저히 의미를 파악할 없어 당황하는 순간 하늘로부터음성 들려왔습니다. “베드로야, 어서 잡아먹어라.”라는 음성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있는 것은 환상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보다, 음성이나 소리가 성령의 임재와 계시를 확증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는 교회의 사역 가운데 직접적으로 음성으로 교회의 선교를 인도하셨다고 사도행전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에게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이 권면했습니다. “너희가 오늘 하느님의 음성을 듣거든 완악한 마음을 품지 마라.”(히브 3:7, 4:7) “하느님을 보거든 아니라, 하느님의 음성이라고 말한 점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엘리야도 호렙산에서 야훼를 만날 야훼께서 바람 속에도, 지진 가운데도,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고, 오직조용하고 여린 소리 성령께서 현존하셨음을 열왕기상 19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소리로 하느님의 현존과 계시를 확증하는 역할을 하십니다.

 

또한 포네는부활의 소망 확증합니다.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이그의 음성 듣고 부활할 것이라고 요한복음 5장은 말하고 있습니다. 처음 하느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하셨던 말씀의 선포도 모두 소리와 관련됩니다. 유대교의 으뜸인 기도는 신명기 6장에 나오는들어라, 이스라엘”, 쉐마 이스라엘 음성과 관련됩니다. 그래서 죽은 라자로를 살려내실 때도라자로야, 나오너라.”라는 예수님의큰소리 있었습니다. (요한 11) 다른 사도들과 달리 역사적 예수를 전혀 적이 없는 사도 바울로가 주님을 만난 것도 바로 음성이었습니다. 시각적 이미지인강렬한 오히려 그의 눈을 멀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로의 눈이 것은 율법 텍스트 이미지에 갇혀 살았던 그의 과거 삶의 종말이었습니다. 이상 과거와같이 시각적인 정보에 매달려 살지 말라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는 눈이 상태에서사울아, 사울아라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가 만난 예수님은 부활의 소망을 확증해 주는 바로 목소리였습니다. 그의 눈을 다시 뜨게 것은 바로 아나니아라는 제자의 기도와 확증의 말이었습니다. 이로써 사도 바울로는 예수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부활을 확증하는 예수의 음성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이미지가 아니라 소리였습니다. 그가 열심히 보던 율법이 아니라, 부활을 확증하는 하느님의 목소리가 그를 살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데살로니가 전서 4장에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외치는 소리”, “대천사의 부르는 소리”, “하느님의 나팔 소리등으로 부활에 대한 표상을 삼았습니다. 이미지가 아니라 바로 소리입니다. 이런 부활의 확증으로서의 소리는 요한묵시록의 종말론적인 소리와도 연관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는 요한묵시록이 매우 시각적 이미지로 가득하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읽어보면소리 관련된 표상들도 넘쳐남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팔 소리”(묵시 1:10; 4:1), “우는 사자”(묵시10:3), “큰물 소리”, “천둥소리”, “거문고 소리” (묵시 14:2) 등입니다. 이러한 청각적 표상들은 하느님의 위엄과 종말의 긴박감을 동시에 전달합니다. 그리고 심판의 경고, 마지막 기쁨에 대한 묘사도 모두 소리와 관련되며,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요한묵시록 21 3절에 나오는 하느님의 옥좌에서 울려 나오는 음성입니다. 하느님께서 그의 백성과 함께 거하시는 절정의 순간도 바로 소리와 함께 시작됩니다. 그리고 요한묵시록의 마지막은 요한이 소리 내어 외치는마라나타(מרנא תא, maranâ thâ)”, 아멘, 오소서, 예수여!” 였습니다. 이것은 하늘로부터 소리에 대한 인간이 표현할 있는 최고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소리에 역사적으로 교회는 다양한 소리로 반응했습니다. 교회는 선포된 하느님의 복음을 소리 전했고, 크고 아름다운 찬양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는 모든 소리 중에 알아들을 있는 소리와 그렇지 않은 소리에 대해 논하면서 소리의 구분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소리에도 영분별이 있다는 뜻이지요. 우리의 예배, 전도, 설교, 가르침 등이 모두 이러한 소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 말에 신기한 것은말을 듣는다라는 말이 순종적이란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있는 자가 듣고, 듣는 자가 결국에는 하느님께도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는다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10:27~30)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 자식이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처럼, 하느님의 음성을 듣지 않는 신자가 하느님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눈을 감아 시각적 이미지를 절제하면서, 먼저 듣는 것부터 연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 그런지 보는 것에는 예민하고 익숙한 , 반면 듣는 데는 매우 서툽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는다고 타박받곤 합니다. 저도 그런 저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지만, 듣는 것이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듣는 것은 내가 상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을 가능한 것입니다. 상대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듣습니다. 듣는 사람은 상대에게 공감하게 되고, 결국에는 상대를 이해할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소리 없이 눈으로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배에서 독서자가 성서를 읽을 , 소리에 경청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우리 성공회는 성서정과에 따라 아침 저녁 성무일과 , 그리고 예배 말씀과 기도를 읽고 듣습니다. 그래서 성공회 신자는 말씀을 듣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예배와 공기도를 통해 연습하고 있습니다. 시간 속에서 흐르듯이 흘러가는 소리 하느님의 음성이 우리 마음에 걸러지는 순간. 우리는 말씀에서 하느님의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들은 말씀이 우리의 생활과 습관을 거룩하게 바꾸는 방향으로 이어질 결국 우리는 하느님의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림절, 기다림의 시간은 바로 이러한 경청의 시간이며, 하느님의 음성을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광야의 외치 소리가 우리 안에도 울려 퍼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고 대림절 기간이 우리가 모두 해를 살아갈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그러한 은총의 시간이 되기를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대림2 (가해)

 

본기도

평화의  하느님, 세례자 요한을 보내시어 회개의 세례를 베풀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광야의 외침 기울여 듣고, 주님께서 평화의 왕으로 다시 오실 부끄러움 없이 주님을 맞이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11:1-10

1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2    야훼의 영이 위에 내린다.
.     지혜와 슬기를 주는 ,
.     경륜과 용기를 주는 ,
.     야훼를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
3    그는 야훼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기쁨을 삼아
.     겉만 보고 재판하지 아니하고
.     말만 듣고 시비를 가리지 아니하리라.
4    가난한 자들의 재판을 정당하게 해주고
.     흙에 묻혀 사는 천민의 시비를 바로 가려주리라.
.     그의 말은 몽치가 되어 잔인한 자를 치고
.     그의 입김은 무도한 자를 죽이리라.
5    그는 정의로 허리를 동이고
.     성실로 띠를 띠리라.
6    늑대가 새끼 양과 어울리고
.     표범이 숫염소와 함께 뒹굴며
.     새끼 사자와 송아지가 함께 풀을 뜯으리니
.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
7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어
.     새끼들이 함께 뒹굴고
.     사자가 소처럼 여물을 먹으리라.
8    젖먹이가 살무사의 굴에서 장난하고
.     젖뗀 어린아기가 독사의 굴에 없이 손을 넣으리라.
9    나의 거룩한 어디를 가나
.     서로 해치거나 죽이는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     바다에 물이 넘실거리듯
.     땅에는 야훼를 아는 지식이 차고 넘치리라.

10   이새의 뿌리에서 돋아난 새싹은
.     만민이 쳐다볼 깃발이 되리라.
.     모든 민족이 그에게 찾아들고
.     그가 있는 곳에서 영광이 빛나리라.

 

 

 

성시_시편 72:1-7, 18-19

1    하느님임금에게
.     올바른 통치력을 주시고 
.     임금의 아들에게
.     정직한 마음을 주소서.
2    당신의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     약한 자의 권리를 세워 주게 하소서.
3    임금이 의를 이루면
.     높은 산들이 백성에게 평화를 안겨주고
.     언덕들이 정의를 가져다주리라.
4    백성을 억압하는 자들을 쳐부수고
.     약한 자들의 권리를 세워 주며
.     빈민들을 구하게 하소서.
5    해와 달이 닳도록
.     그의 왕조 오래오래 만세를 누리게 하소서.
6    풀밭에 내리는 단비처럼,
.     땅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     은덕 만인에게 내리리니
7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     달이 닳도록 평화 넘치리라.
18  당신 홀로 놀라운 행하셨으니
.     이스라엘의 하느님, 주님은 찬미 받으소서.
19  영광스런 이름, 길이길이 찬미 받으소서.
.     영광 땅에 가득히. 아멘, 아멘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15:4-13

4 성서 말씀은 모두 우리에게 교훈을 주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서에서 인내를 배우고 격려를 받아서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5 아무쪼록 인내와 격려를 주시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뜻을 따라 모두 한마음이 되어 6 다같이 목소리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7 ¶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받아들이신 것같이 여러분도 서로 받아들여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8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진실성을 드러내시기 위하여 할례받은 사람들의 종이 되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이루셨고 9 이방인들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찬양 하게 되었습니다. 성서에도,

.   “그러므로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     
주께 찬양을 드리며 주님의 이름을 찬미하리라.”
.     
시편 18:49(2사무 22:50)

하였고 ,

10“이방인들이여, 주님의 백성과 함께 기뻐하여라.”
.   
 신명 32:43

하였으며 ,

11“모든 이방인들이여, 주를 찬양하여라.
.     
모든 민족들도 주를 찬양하여라.”
.     
시편 117:1

하였습니다. 12 그리고 이사야도,

.   “이새의 줄기에서 싹이 돋아
.     
이방인들을 다스릴 분이 나타나리니
.     
이방인들은 그분에게 희망을 걸리라.”
.     
이사 11:1, 10

하였습니다. 13 아무쪼록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께서 믿음에서 오는 온갖 즐거움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가득히 안겨주시고 성령의 힘으로 희망이 여러분에게 넘쳐 흐르게 하여주시기를 빕니다.

 

 

 

복음서_마태 3:1-12

1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2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 하고 선포하였다. 사람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3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들린다.
.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
.     칠십인역 이사 40:3

4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살았다. 5 때에 예루살렘을 비롯하여 유다 지방과 요르단 부근의 사람들이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서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많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다. “ 독사의 족속들아!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8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9 그리고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하는 말은 아예 생각도 마라. 사실 하느님은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닿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는 찍혀 속에 던져질 것이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뒤에 오시는 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그분은 나보다 훌륭한 분이어서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는 사람이다. 12 그분은 손에 키를 드시고 타작 마당의 곡식을 깨끗이 가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