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12. 21. 가해_대림4주일
이사 7:10-16 / 시편 80:1-7, 17-19 / 로마 1:1-7 / 마태 1:18-25
“탄생 이야기: 예수의 신원(身元) 1”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오늘 대림 4주일부터 성탄 밤, 성탄대축일 설교문을 세 편으로 나눠 예수의 신원에 대해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전하는 진실이 무엇이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를 통해 살펴보길 원합니다. 오늘은 그 첫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읽은 복음서와 2 독서는 예수의 신원에 대해 마태오와 사도 바울로가 각각 다른 각도에서 서술한 내용입니다. 마태오는 이야기로 예수의 탄생에 관해 서술했고, 사도 바울로는 예수의 신원에 대해 신학적으로 진술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마태오복음의 예수 탄생 이야기를 사실로 여기기보다 꾸며낸 이야기로 생각합니다. 영웅의 탄생 이야기는 고대로부터 신화적이고 영웅적으로 그려지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창시자로서 예수를 신격화한 이야기라 보통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로의 서술에 대해서는 마태오의 이야기보다 비판에 있어 약간 주춤하게 마련입니다. 한번 읽어서는 그 말의 뜻이 금방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믿음이 좋은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이를 “아멘”하고 받아들입니다. 사도 바울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술은 분명 그리스-로마 문화에 젖어 있던 로마 그리스도인들을 상대로 한 것이어서 인식론적인 “그리스도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열두 제자처럼 실제로 예수를 본 사람이 아니라 부활한 예수를 만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출현했던 현상적 사건에 대해 헬라적-유대적 사고 체계 위에 이를 진술했습니다. 예수의 신원을 “인성”과 “신성”으로 분류해서 설명하는 조직적인 사고를 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역사의 예수”보다는 그가 만난 “부활의 예수”가 그의 그리스도론의 중심이 됩니다. 그가 인식한 예수는 성육신하셔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인류의 구원자이며,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분으로, 또 천지 만물을 주관하시는 우주적 그리스도로 그를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부활의 권능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신 분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를 쓴 저자를 전통적으로 예수의 제자였던 세리 마태오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태오복음이 서기 80~90년경에 집필됐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그것은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멉니다. 마태오복음이 집필될 때는 개인이 자신의 이름으로 창작한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에 글을 쓰는 사람은 그 글에 권위를 가질 사람의 이름에 헌정하여 작품을 썼습니다. 자신의 스승이나, 자신의 글에 권위를 부여해 줄 이의 이름을 붙이는 것만으로도 글쓴이에게 영광이었습니다. 개인의 저작권을 중시하는 현대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마태오복음은 수준 있는 헬라어를 사용했고, 예수 어록과 마르코복음을 기초 자료로 한다는 점에서 예수의 직제자였던 마태오가 기록했다는 것은 개연성이 떨어집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는 마태오복음을 기록한 마태오 공동체가 예루살렘 모교회와 바울로계 교회 중간에 위치한 시리아 교회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마태오 공동체는 그리스어를 주로 구사하는 유대계 그리스도인이 주류를 이룬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래서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익숙했고, 유대교의 규율과 관습에 친숙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이스라엘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필자는 유대계 그리스도인 율사였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를 편의상 “마태오”라고 부릅니다.
마태오복음은 이스라엘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서 예수의 신원을 밝히는 데 주력했습니다. 그래서 다른 복음서에 비해 “구약 예언”을 인용한 부분이 매우 많습니다. 이를 학자들은 “성취인용문”이라 부릅니다. 오늘 읽은 복음에서도 이사야서 7장의 예언을 인용하여 예수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마태오의 그리스도론은 “구약 예언의 성취자”이며, “율법의 참 해석자”로 예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공동체가 시리아에 위치한 유대계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된 만큼 그들은 구약 예언의 성취자로서의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는 다윗의 혈통을 잇는 이스라엘의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마태오복음에는 왕이신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당시의 선진국이었던 동방의 파르티아(Parthia)에서 온 박사들이 그의 탄생을 축하하러 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대로 예수의 호칭을 “임마누엘”이라 칭합니다. 이사야 예언가의 예언이 예수에게서 성취됐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 생전에 예수께서 임마누엘이라 불리신 적은 없습니다. 그 이름은 구약 예언의 성취를 나타내는 표징이면서, 동시에 과거 구약에서는 은폐되었던 하느님께서 이제 인간 가운데 함께 계심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은폐된 하느님께서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나타나신 사건. 이것이 마태오 복음사가가 본 예수의 탄생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복잡하고 실증 불가능한 예수의 탄생을 설명하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방법을 쓸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복음서를 기록했던 마태오처럼 잠시 상상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역사적으로 예수의 운동은 길어야 고작 3년 정도였습니다. 그 기간에 예수께서도, 제자들도 아무도 문자로 된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 놀랍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복음서 말고는 실제적인 예수의 탄생과 유년 시절에 대한 실증적 자료가 없습니다. 자신의 예언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했던 마호메트와 비교해도 참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예수에 대한 기록이 처음 등장한 것은 신약성서에서 데살로니카 전서가 50년경에 나왔으니, 최초의 기록입니다. 그리고 복음서 중에 먼저 기록된 것이 마르코 복음으로 서기 70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예수의 직계 제자였던 사도들이 전혀 기록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이상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사도들의 이름으로 기록된 복음서와 서신서 등도 모두 그 사도들과 관련된 공동체나 그 추종자들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성서 기록자들이 참고했던 자료들은 대부분 사도나 제자들이 전한 구전 자료와 단편적인 어록이 전부였을 겁니다. 그래서 복음서 기록자들은 예수의 기록을 대부분 “스토리 텔링” 기법으로 서술을 했습니다. 예수의 생애를 전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이야기를 구성하고, 각 이야기 마다 “플롯”을 설정하며, 플롯마다 등장인물로서 예수와 만난 사람들을 출연시킵니다. 그리고 단편적으로 전해진 예수의 어록을 특정 “배경”을 설정하여 구성하고, 이야기마다 “갈등 또는 분쟁, 사건”의 내용을 담습니다. 이러한 이야기 구성으로 각 복음서는 나름의 주제들을 갖고 있으며, 특히 예수의 신원에 대해, 그가 하신 일에 대해 그리고 예수와 우리의 관계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는 진술하기 어려운 예수의 탄생과 그의 활동에 대해, 사도 바울로의 인식론적 진술보다 훨씬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 형식으로 진실을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서가 가진 이야기의 힘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서의 이야기가 우리 각 개인의 내면적 진실과 어떻게 공명하느냐가 더 큰 문제입니다. 만약 그 이야기들이 우리를 속이는 거짓이라는 선입견을 품고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우리는 전혀 그 이야기에 공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실증적인 잣대로 이야기를 재단하게 됨으로써 결국에는 그 이야기가 가진 진실을 간과하게 됩니다. 특히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우리가 가진 실제적 자료가 하나도 없다는 데 우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아마 마태오도 탄생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다양한 구술 자료들을 수집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한 자료 중 어떤 것이 사실인지 어떤 것이 거짓인지를 구분하는 것보다, 그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이 인간의 보편적 양심에 어떻게 공명하는지가 더 중요한 잣대로 작동했을 겁니다. 이처럼 예수의 탄생 이야기는 “이야기 방식” 말고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양심대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동의할 수 없는 것을 무조건 믿으라는 것은 마태오복음서 저자의 의도에도 맞지 않습니다. 마태오는 우리에게 한 이야기를 전할 뿐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진실과 공명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그 이야기가 왜 우리에게 불편하게 들리는지, 그 이야기를 통해 성서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숙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이아를 읽으면서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지 않습니다. 대신 그 이야기가 전하는 진실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서사시들은 아직도 인류에게 진한 삶의 진실을 전해 줍니다. 아무도 시시포스의 신화를 읽으면서 그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삶의 통찰과 진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알베르 카뮈는 시시포스 신화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고 인간 실존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이야기에는 어떤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복음서가 기록한 예수의 탄생 이야기도 인류에게 던지는 분명한 진실이 있습니다. 그 진실을 이야기 속에서 대면하는 것이 곧 우리가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의 의미입니다.
다윗의 계보에 따라 구약 예언의 성취로서의 예수의 오심은 지극히 무기력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예수를 그리고 있습니다. 마태오와 루가복음 사가도 마르코복음 사가처럼 예수의 시작을 성인이 되어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는 장면부터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 예언의 성취를 각자의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각각 다른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전개했습니다. 세상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로마 황제의 위엄있는 모습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연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그가 오셨다는 점이 마태오와 루가복음이 공통으로 전하는 예수의 신원입니다. 아기는 너무 쉽게 상처받고, 너무 쉽게 위협받을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기는 철저히 부모의 보호 아래 있어야만 안전과 평화가 담보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구원사는 깨지지 쉬운 와인잔처럼 가장 의존적인 존재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그런 무방비의 아기는 그 연약한 모습 그대로 나중에 성인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죽음을 맞이합니다. 태어날 때도 죽을 때도 그는 한결같이 무기력하고, 무방비적이며, 나약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죽음 앞에서 모든 제자가 도망을 친 것입니다. 그가 태어날 때도 그가 죽을 때도 아주 소수의 사람만 그의 곁을 지켰습니다. 이것이 하느님 구원사의 시작과 끝입니다. 그는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분이시지, 세상과 싸우러 오신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세상을 적대적으로 상대화시키지 않으시고, 대신 세상 속으로 스며드셨습니다. 사악한 악의 무장을 해제시키는 것은 강력한 적대적 힘이 아니라,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가장 의존적인 연약함입니다. 모든 인간이 가장 연약한 존재로 이 세상에 던져진 것처럼 그 또한 그렇게 오셨습니다. 그는 세상의 악과의 전투력을 높이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두 주먹을 불끈 쥐신 것이 아니라, 어미의 젖을 빨려고 그 손을 펴셨고, 또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 손을 펴고 두 팔을 벌려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는 세상을 전복시키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용서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세상은 투쟁이 아니라 사랑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도 가장 연약한 모습으로 성모 마리아의 따뜻한 품의 보살핌을 받으셨습니다. 따뜻한 엄마의 품은 곧 하느님 사랑의 표징입니다. 사랑은 아기를 향한 아무런 조건 없는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탄생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전적인 의존성을 가지고 마치 엄마의 품 안에 안긴 아기처럼 하느님께 우리를 의탁할 수 있습니다. 성탄은 아기 예수께서 마리아의 품에서 느꼈던 그 평화와 사랑을 우리도 느끼고 또 그것을 세상과 나누라는 의미입니다. 초기 교회에서 세례받은 신자는 세례식 때 우유를 마셨다고 합니다. 그것은 세례를 통해 우리가 영적인 아기로 새로 태어났다는 표현입니다. 그런 영적인 젖먹이가 바로 우리의 시작이고, 우리는 그 지점에서부터 성령과 함께 조금씩 아이가 자라가듯이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이 성탄은 그렇게 우리의 시작이 어디에서부터인지, 내 믿음의 유아기는 언제였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로부터 영적인 자양분을 먹고 성장했는지 각자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마태오와 루가가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서술했듯이 여러분의 믿음의 탄생 이야기는 어떠합니까? 꼭 극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러한 것을 서술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그 경험이 바로 여러분 자신의 믿음입니다. “서술되지 않는 경험은 없는 것이다”(기시미 이치로_岸見一郎)라는 말이 있습니다. 꼭 글로 쓸 필요는 없지만, 자신의 경험을 서사로 바꿔서 남에게 이야기하다 보면 그것이 더 구체화되고, 더 구조적으로 됩니다. 그래야 경험은 자신의 것이 될 뿐만 아니라 남과 공유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예수의 탄생이야기가 가진 이러한 이야기의 힘이 우리의 믿음의 뿌리를 돌아보는 각자의 이야기가 되길 빕니다. 우리의 시작점을 분명히 알아야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방향도 제대로 잡을 수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이야기처럼 여러분 각자의 믿음의 탄생 이야기를 통해 이 성탄절을 더욱 뜻깊게 맞이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전례독서_대림4주 (가해)
본기도
은혜로우신 하느님, 은총으로 마리아를 택하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이제 우리도 성모 마리아를 본받아 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모든 일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며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7:10-16
10 야훼께서 아하즈에게 다시 이르셨다. 11 “너는 야훼 너의 하느님께 징조를 보여달라고 청하여라. 지하 깊은 데서나 저 위 높은 데서 오는 징조를 보여달라고 하여라.” 12 아하즈가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나는 징조를 요구하여 야훼를 시험해 보지는 않겠습니다.”
13 이사야가 말하였다. “다윗 왕실은 들어라.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것도 부족하여 나의 하느님까지도 성가시게 하려는가? 14 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시리니, 처녀 (“젊은 여인”이라는 뜻도 있음)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
이라 하리라. 15 그 아기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택할 줄 알게 될 때는 양젖과 꿀을 먹게 될 것이요, 16 그 아기가 나쁜 것을 버리고 좋은 것을 택할 줄 알게 되기 전에 네가 원수로 여겨 두려워하는 저 두 왕의 땅은 황무지가 되리라.”
성시_시편 80:1-7, 17-19
1 이스라엘의 목자여,
. 요셉 가문을
. 양떼처럼 인도하시는 이여,
. 귀를 기울이소서. ◯
. 거룹 위에 좌정하신 분이여,
2 에브라임과 베냐민, 므나쎄 가문 앞에,
. 햇빛처럼 나타나소서. ◯
. 힘을 떨치고 오시어,
. 우리를 도와주소서.
3 만군의 하느님, 우리를 다시 일으키소서. ◯
. 당신의 밝은 얼굴 보여 주시면,
. 우리가 살아 나리이다.
4 만군의 주, 하느님,
. 당신 백성의 기도소리를 ◯
. 언제까지 노엽게 들으시렵니까?
5 당신 백성에게 눈물의 빵을 먹이시고 ◯
. 싫도록 눈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6 이웃들에게는 시빗거리가 되게 하셨고 ◯
. 원수들은 우리를 비웃습니다.
7 만군의 하느님,
. 우리를 다시 일으키소서. ◯
. 당신의 밝은 얼굴 보여 주시면,
. 우리가 살아 나리이다.
17 당신 오른편에 계시는 분, ◯
. 몸소 굳건히 세워 주신 그분을 붙들어주소서.
18 다시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리니
. 우리를 살려 주소서. ◯
. 당신의 이름을 불러 예배 하리이다.
19 만군의 하느님, 우리를 다시 일으키소서. ◯
. 당신의 밝은 얼굴 보여주시면,
. 우리가 살아 나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로마 1:1-7
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나 바울로가 이 편지를 씁니다. 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특별한 사명을 띤 사람입니다. 2 이 복음은 성서에 있는 바와 같이 일찍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것입니다. 3 그것은 다름 아닌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소식입니다. 그분은 인성으로 말하면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신 분이며 4 거룩한 신성으로 말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어 하느님의 아들로 확인되신 분입니다. 그분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5 내가 은총으로 사도직을 받은 것도 그분을 통해서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이방인들에게 하느님을 믿고 복종할 것을 가르침으로써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6 여러분도 그들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7 하느님께서 사랑하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불러주신 로마의 교우 여러분에게 문안 드립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시는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깃들기를 빕니다.
복음서_마태 1:18-25
18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20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어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주었다. 22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23“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 칠십인역 이사 7:14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25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지내다가 마리아가 아들을 낳자 그 아기를 예수라고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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