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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롭고 성실한 대사제”_2025.12. 28. 가해_성탄1주일_설교문

James Chae 2025. 12. 28. 07:32

 

2025.12. 28. 가해_성탄1주일

이사 63:7-9 / 시편 148 / 히브 2:10-18 / 마태 2:13-23

 

 

자비롭고 성실한 대사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성탄절을 맞으며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봤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게 하셨을까?” “, 굳이 초월적인 분이 유한성의 인간이 되셨을까?” “하느님의 권능으로 만민이 보는 앞에서 악을 벌하고 죄인들을 멸하시어 억울하게 억눌려 사는 사람들을 해방하셨다면 어땠을까?” “ 무기력하고 의존적이고 깨지기 쉬운 아기로 태어나신 것일까?” 사실 이러한 질문은 정확하게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똑같이 해당합니다. “ 그분은 십자가 밑에서 조롱하던 자들의 말처럼 하느님의 권능으로 자기 자신을 구원하지 않으셨을까?”, “ 그는 세상의 악에 무기력하게 저항도 하고 처참하게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하셨을까?” “공생애 동안 그가 보였던 초자연적 능력으로 모든 적을 물리칠 있지 않았을까?”, “ 그분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사들,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공격에는 적극적으로 방어를 하셨으면서도, 정작 십자가형을 당하는 순간에서 무기력하게 침묵하셨을까?” “ 그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아무런 저항도 하고 고통을 당하셨을까?” “가여운 어린아이로 오신 분이, 더욱 가엽고 처참한 모습으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을까? 교리상으로 우리는 모든 것이 우리의 구원 때문이고,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는 이를 받아들일 있지만, 지적인 동의를 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이러한 논란과 질문들이 무수히 쏟아졌고,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에 응답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초기에는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신앙이 강했기 때문에 그러한 예수의 신원과 관련된 신학적 진술을 체계적으로 교회가 준비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그러나 점차 예수의 재림이 더뎌지고, 많은 이단과 율법주의자들의 공격 , 다양한 내외부의 공격으로 초기 교회는 절대 자유롭지 않았을 겁니다. 복음서를 비롯하여 모든 신약성서 등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교회 내외부의 도전에 응답하기 위한 목적으로 기술되었습니다. 복음서가 예수의 신원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다양한 요구에 대한 답변을 시도한 것이지요. 특히 오늘 우리가 읽은히브리서 서간문으로 보통 말하지만, 엄밀히 따지면강론집 가깝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서간문의 형식을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읽는 독자들에게 분명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에 대해 강론을 하고 있음을 저자 자신도 자각하면서 글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교리는 물론이고, 사목적 권고 등도 나옵니다.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예수의 신원은 한마디로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대사제의 역할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사제라는 말이 열네 , “대사제라는 말이 열네 나옵니다. 이는 다른 신약성서에서는 없는 히브리서만의 특징입니다. 전통적으로 유대교의 대사제는 백성과 하느님 사이의 중재자 역할입니다. 백성의 죄를 대신 하느님께 아뢰고, 희생제물을 바침으로써 백성의 죄가 사해지도록 하는 중재자입니다. 히브리서가 작성된 시기가 서기 80~90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때는 이미 초기 교회 내에서 예수에 대한 기본적인 신학적 정리가 이뤄진 때였습니다. 특히 그분의 죽음은 인간 속죄를 위한 죽음이었으며, 그분의 십자가는 성전에서 드리는 속죄 제사의 표징이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됐을 시기입니다. 그러나 사실 역사의 예수는 번도 유대교 사제의 역할을 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아는바 그는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사제의 혈통에서 태어나신 분도 아니셨습니다. 그러니 초대 교회에서도 예수에 관해 대사제라는 말을 붙이는데 처음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겁니다. 유대인들은 그러한 교회의 주장을 아마도 비웃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사제직은 전통적으로 아론계 레위 지파에 의해 계승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 혈통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창세기에 나오는 멜기세덱에서 계보를 찾았습니다. 멜기세덱은 아론이나 레위 계열이 아닌 영원한 대사제의 표본이었기 때문입니다(창세 14:18~20).

 

히브리서가 예수의 신원을 대사제로 선포한 이유는 예수의 성육신 신학이 바탕이 됩니다. 그는자비롭고 성실한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입니다. “자비롭고 성실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서에서 대사제의 특징을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이는 예수의 정체성과 인품을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자비롭다라는 말은 그가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이심을 뜻합니다. 자비는 바로 예수를 통한 하느님 자비의 실현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그분은 철저히 자비심을 가진 인간이셔야 했습니다. “가현설주의자 주장하듯이 모양만 사람인 척하는 성육신이 아니라 그분은 우리와 똑같은완전한 사람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과 똑같이 나약함, 고통, 시험, 배고픔 등과 같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을 경험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진자비로운 대사제 되실 있었습니다. 

 

자비로운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는 또한성실한 대사제이셨습니다. 성실하다는 뜻의 헬라어피스토스πιστός”믿을만하고, 충실한 가지 뜻이 동시에 있습니다. 일을 맡기는 처지에서는믿을 만한 것이고”, 이를 수행하는 처지에서 충실하게 충성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그러한 신성의 특권을 전혀 누리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영광스러운 신성의 자리 대신 하느님 앞에서 철저히 순종하셨고, 고난과 죽음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는 모세가 그의 백성을 끝까지 책임졌던 것처럼, 대사제의 직분을 끝까지믿을만하게, 충실하게수행하셨습니다. 구약의 사제들이 짐승의 살과 피로 속죄 제사를 드렸던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살과 피를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썩어 없어질 양의 피와 살이 인간의 죄를 없애는 효력이 있다면, 인간이신 대사제의 몸과 살은 효력이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는성실함과 진실함으로 고통과 고난, 순종과 희생을 통해 철저히 하느님께 순종하셔서 그분의 자비를 실현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멜기세덱의 계보를 잊는 대사제이시라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히브리서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대사제로 선포한 데에는 당시 히브리서를 접했던 히브리서 공동체의 내부적 문제가 분명히 삶의 자리로 있습니다. , 예수의 재림이 더뎌지고, 교회가 조금씩 체계를 갖춰가면서 신자들 사이에 형식적인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부모님이나 주인이 예수를 믿으면 가족이나 종들도 모두 예수를 믿는 그러한 분위기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인적인 의지보다는 타자나 가족, 친족의 의지에 의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 형식적인 모양만 있는 그리스도인이 늘어났습니다. 교회에서 신자들이 서로를 위해 희생하기보다 모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고, 봉사보다는 대접을 먼저 받으려 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의 정신은 점점 이야기나 교리 속에 묻히고, 사람들의 신앙이 점점 종교로 박제화되기 시작했을 겁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대사제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다시 한번 환기함으로써 신자들이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의 순종과 희생을 다시 되새기를 원했던 겁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분량의 반은 예수의 신원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나머지 상당한 부분은 신자들을 위한 훈화로 가득 있습니다. , “대사제이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신자 되도록 훈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처음 세례 가졌던 신앙적 열정과 확신을 회복하길 원했던 것이지요.

 

히브리서가대사제로서의 예수의 신원 강조한 다른 이유는, 우리가 그러한 예수의 은총을 받은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 예수의 신분을 통해 우리가 어떤 신분을 가지게 됐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깨닫게 것입니다. 우리는 대사제이신 그분의 희생 제사로 인해 사함을 받은 사람들이고, 이를 통해 깨끗한 양심을 지니게 됐으며, 죽음의 세력으로부터 해방된 존재라고 말합니다. 또한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꿈에도 없었던 천상의 선물인성령 선물로 받아 우리는 이미거룩하고 완전한 사람 됐다고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내세의 약속 또한 보장받은 하느님의 자녀가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같은 육신을 가진 존재로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와 떼려야 없는 형제 관계가 됐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유대교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2 9절은 우리 모두를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은 예수님과 세상을 중재하는 중재자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중재자가 되신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도 예수와 세상의 중재자 역할을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대사제이시면, 우리는 그분의 계보를 잇는 사제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통해 예수의 신원에 대해서 매년 깊이 고찰하는 이유는 우리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를 온전히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은 자신이 어떤 은총을 받았는지를 분명히 자각됩니다. 내가 어떤 은총을 받은 존재인지를 자각하지 못하면 우리는 신앙에 있어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아는 자는 자신의 신원도 알게 됩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대로 우리는 예수와 함께 살과 피를 공유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 이를 상기하면서감사성찬례 영성체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예수와 우리의 관계성을 계속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의 희생 제사로 그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는 그분과 같은 신원을 공유합니다. 우리는 살과 피를 나눈 형제이며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입니다. 이러한 관계성은 예수와 하느님의 관계성을 것이 성령님이셨듯이,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중재하시는 분도 바로 성령이심을 깨닫게 합니다. 예수께서 세례받으실 하느님의 성령이 임하셔서 그분의 신원을 밝혔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를 믿는 순간 성령의 은총을 경험함으로써 우리 자신의 신원을 깨닫게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하느님을아빠 아버지 부를 없습니다(로마 8:15; 갈라 4:6). 오직 성령께서만 우리의 신원이 하느님의 자녀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 됨을 자각하게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결국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사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두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와 같은 피와 살을 나눈 형제로서 하느님의 자녀이고, 우리는 예수께서 그렇게 하느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신 것처럼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께서 마련해주신 영광의 길에 다다르기 위해 성령과 함께 매일 나아갑니다.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이 없고 세상에서 자랑할 것이 많지 않지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압니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는 것은 세상을 살아가는 시작점을 바로 아는 것으로, 비록 우리가 길을 잃을 때도 우리는 절대로 넘어지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사제의 역할을 끝까지 다하신 것처럼, 우리도 그분을 본받는 위에서 벗어날 없습니다.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신원도 투명하게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탄절을 통해 우리의 몸과 피와 살의 귀중함을, 나의 됨의 귀중함을, 나를 사랑하셔서 오신 그분의 은총의 귀중함을 동시에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은총이 이번 성탄 절기에 여러분 가운데 풍성하게 함께하시길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성탄1 (가해)

 

본기도

하느님, 인간을 주님의 형상을 창조하셨으며, 죄에 빠진 인간을 주님의 은총으로 회복시켜주시나이다. 비오니, 성자께서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신 것처럼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명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63:7-9

7    야훼께서 이루신 고마우신 ,
.     야훼께서 이루신 놀라우신 일들을
.     나는 노래하리라.
.     야훼, 너무나도 친절하신 ,
.      크신 자비와 끝없는 선하심으로
.     베풀어주신 은혜를 어찌 잊으랴?
8  그들이야말로 나의 백성이다.
.     배신을 모르는 나의 아들들이다.”
.     이렇게 선포하시고
.     온갖 곤경에서 그들을 구해 주셨다.
9    누구를 대신 파견하거나 천사를 보내지 아니하시고
.     당신께서 친히 오시어 그들을 구해 내셨다.
.     다만 그들을 사랑하시고 가엾게 여기시어 건져내셨다.
.     기나긴 세월을 하루같이 그들을 쳐들어 안아주셨다.

 

 

 

성시_시편 148

1    알렐루야!
.     하늘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     높은 데서 찬양하여라.
2    그의 천사들 모두 찬양하여라.
.     그의 군대를 모두 찬양하여라.
3    해와 달아 찬양하고
.     반짝이는 별들아, 모두 찬양하여라.
4    하늘 위의 하늘들,
.     하늘 위에 있는 물들아, 찬양하여라.
5    주님의 명령으로 생겨났으니,
.     그의 이름 찬양하여라.
6    지정해 주신 자리, 길이 지키어라.
.     내리신 법은 어기지 못한다.
7    땅에서도 주님을 찬양하여라.
.     물고기도 깊은 바다도,
8    번개와 우박, 눈과 안개도,
.     당신 말씀대로 몰아치는 된바람도,
9     저산 모든 언덕도,
.     과일나무와 모든 송백도,
10  들짐승들과 가축들도
.     기는 짐승과 나는 새들도,
11  세상 임금들과 모든 추장들도
.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도
12  총각 처녀 없이
.     늙은이 어린이 모두 함께
13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     홀로 한없이 높으시고
.     하늘 위에 위엄 떨치신다.
14  당신 백성의 영광을 드높여 주셔서,
.     당신을 가까이 모신 백성,
.     이스라엘 후손들,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히브 2:10-18

10 하느님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만물은 그분을 위해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당신의 많은 자녀들이 영광에 참여할 있도록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해서 완전하게 하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11 사람을 거룩하게 해주시는 분과 거룩하게 사람들은 모두 같은 근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거리낌없이 그들을 형제라고 부르시고 12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
내가 당신의 이름을 형제들에게 선포하며
.    
회중 가운데서 당신을 찬미하겠습니다.” 시편 22:22
13
나는 그분을 신뢰하겠습니다.이사 8:17(2사무 22:30 참조)하고 말씀하셨고 다시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녀들이 나와 함께 여기 있습니다칠십인역 이사 8:18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4 자녀들은 다같이 피와 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예수께서도 그들과 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오셨다가 죽으심으로써 죽음의 세력을 잡은 악마를 멸망시키시고 15 한평생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던 사람들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16 예수께서는 천사들을 보살펴 주신 것이 아니라 분명히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살펴 주셨습니다이사 41:8-9  17 그러므로 그분은 모든 점에서 당신의 형제들과 같아지셔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자비롭고 진실한 대사제로서 하느님을 섬길 수가 있었고 따라서 백성들의 죄를 없이 있었습니다. 18 그분은 친히 유혹을 받으시고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유혹을 받는 모든 사람을 도와주실 있으십니다.

 

 

 

복음서_마태 2:13-23

13 박사들이 물러간 뒤에 주의 천사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어서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알려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하고 일러주었다. 14 요셉은 일어나 밤으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가서 15 헤로데가 죽을 때까지 거기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내가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호세 11:1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6 ¶
헤로데는 박사들에게 속은 것을 알고 몹시 노하였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박사들에게 알아본 때를 대중하여 베들레헴과 일대에 사는 이하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여버렸다. 17 이리하여 예언자 예레미야를 시켜,
18“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    
자식 잃고 우는 라헬,
.    
위로마저 마다는구나!”
.    
예레 31:15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19
헤로데가 죽은 뒤에 주의 천사가 이집트에 있는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20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이미 죽었으니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라.” 하고 일러주었다. 21 요셉은 일어나서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왔다. 22 그러나 아르켈라오가 자기 아버지 헤로데를 이어 유다 왕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그리로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꿈에 지시를 받고 갈릴래아 지방으로 가서 23 나자렛 이라는 동네에서 살았다. 이리하여 예언자를 시켜그를 나자렛 사람이라 부르리라. 판관 13:5, 7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