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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복(原福): 실존의 근거와 존재의 힘”_2026.2.15 가해_설명절 별세기념성찬례_연중6주일_강론

James Chae 2026. 2. 15. 06:25

 

 

2026.2.15 가해_설명절 별세기념성찬례_연중6주일

민수 6:22-27 / 시편 89:1-2, 11-16 / 야고 4:13-17 / 마태 6:19-21, 25-34

 

 

원복(原福): 실존의 근거와 존재의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보아라.” 마태 6:26-28

 

오늘 주님께서 말씀하신 공중의 새와 들꽃 비유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라 모르시는 분이 없을 압니다. 그리고 대부분 말씀을재물을 땅에 쌓아놓거나 그것에 집착하지도 말며, 공중의 새처럼, 들에 들꽃처럼 염려하지 말고, 하느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교훈으로 받아들입니다. 물론 말씀은 그러한 뜻도 내포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에게는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면 전혀 말이 먹히지 않는 당연합니다. 수중에 가진 하나도 없는데 공중의 새와 들꽃을 보면서 하느님만 믿으면 해결된다는 말은 무책임한희망 고문일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근원적인 생명력, '원복(Original Blessing)' 회복하라는 초대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이셨고, 그분은 이미축복 대한 유대교적인 의미를 알고 계셨습니다. 신약성서가 나오기 전에 당시에 하느님의 뜻을 연구할 있는 것은 오직 구약성서뿐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 예수께서 이사야의 예언을 풀어 설명하신 사건을 기억합니다. 주님께서는 구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구원에 대해 말씀하시지만, 구원은 본질적으로 창세기의 축복에 기반함을 아셨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장을 읽으면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구절인 창세기 1 28절은 단순한문화 명령 아니라 하느님의보편적 축복의 선언입니다. 이는 독일의 신학자 클라우스 베스테르만의 제안입니다. 그는 창세기 1 28절의 축복이 계속해서 아담에서 노아에게로, 노아에서 아브라함에게로, 아브라함에서 모세에게로, 모세에서 다윗에게로 그리고 많은 선지자들을 거쳐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구약이 말하는 축복의 계보입니다. 이는 분명 구속사적인 관점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를 간단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 구속사적인 관점에 고정되어 있고, 많은 그리스도교 근본주의 때문에 축복 신학이 많이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축복은 많이 벌고, 행복하게 만족하며 사는 정도로 취급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믿고 헌금 많이 하고 교회에 충성하면 복을 받고 그렇지 않으면 복에서 제외된다는 개념이 아닙니다. 복을 받기 위해 매달려 기도해도 그러한 복은 내려지지 않습니다. 창세기 1 28절의 축복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축복과 구원은 성서를 이해하는 커다란 축입니다. 구원(Salvation) 수직적입니다. 말은 위로부터 하느님의 전적인 개입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일회적인 사건이면서종말론적입니다. 구원은하느님이 구원하셨다.”라는 하느님의 개입과 행위에 방점이 있는 반해 축복은그는 복되다라는 존재의 상태와 관련됩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은 일회적 사건입니다. 물론 인간의 생애에서 우리는 끊임없이영적인 출애굽 반복하지만, 그것은 회개의 과정일 , 구원은 이미 시작됐고, 그리고 마지막 때에 일회적으로 완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사적으로 우리의 실존적 삶을 채워가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축복(Blessing)” 다릅니다. 축복은 창세기 1 28절에 선포된 하느님의 보편적 은총입니다. 우리 성서는 이러한 축복 위에 기록된 것입니다. 성서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역사도 이러한 축복의 계승에 관한 믿음의 고백들입니다. 구원은 일회적이면서종말론적이지만, 축복은 우리의 현실과 오늘을 반영합니다. 축복은 우리의 일상과 생존에 밀접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며생존이 우리의 소명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래서축복구원 다르게 수평적입니다. 수평적이기에 이는 나와 가족, 나와 이웃, 나와 사회 간의 관계성 가운데서 드러납니다. 그것은 축복의 근원인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면서 동시에 수평적으로 이웃과 나눌 있습니다. 그것은 복의 상태 안에 모든 생명체가 자리하게 합니다. 그리고 수평적이기에 축복은 대를 이어 계승될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축복이 이사악에게로, 이사악에서 야곱에게로 계승됐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야곱이 축복권을 얻기 위해 에사오를 속이기까지 했는지 이해가 됩니다. 축복은 인간의 전존재와 실존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말은 인간의 생애가 하느님의 복으로 가득한 상태를 상정합니다. 그것이 생명이 충만한 상태입니다. 생명은 성령의 역동적 힘입니다. 그래서생육하고 번성하다라는 것은 생명력이 충만하여 계속 이어짐을 뜻합니다. 그러한 복을 마다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창세기가 말하는 축복은 점진적이며 과정적입니다. 그것은 절대적 시간이 필요합니다. 마치 씨앗이 점진적으로 자라서 열매를 맺듯이, 축복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인간의 생애를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구원 사건이고, 축복은일상입니다. 물론 축복이든, 구원이든 주님의 재림 모두 최종적으로 완성됩니다. 

 

축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바라크(בָּרַךְ, Barak)” 매우 역동적인 단어입니다. 구약에서 대부분 하느님이 축복하실 단어를 동사로 표현했습니다. 어원은무릎 뜻하는 히브리 명사 베레크(בֶּרֶךְ, Berek)”입니다. 그래서 고대 히브리인들은 축복을 하느님 앞에서무릎을 꿇는 으로 이해했습니다. 우리가 매일 아침기도 노래하는 시편 95 6절은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어서 와 허리 굽혀 경배드리자. 우리를 지으신 야훼께 무릎을 꿇자.” 시편 95:6

 

 

여기에서 사용된무릎을 꿇자동사가 바로 축복을 의미하는바라크입니다. 이는 창세기 1 28절과 같은 단어입니다. 바라크 동사가 인간을 주어로 하면 하느님 앞에 무릎을 꿇어 예배드리는 의미가 되고, 하느님을 주어로 하면축복하다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성서가 말하는 축복은 예배와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있습니다. , 축복은 돈이나 물질과 건강 등과 같은 실제적인 것을 포함하지만, 그것은 근원적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 뿌리를 둡니다.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예배를 통해 연결된 상태. 그것이 바로 바라크,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 가운데 머무는 것입니다. 이는생육하고 번성하는생명이 우리 예배 가운데 충만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전적인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그러한 생명력이 충만하니 우리는 세상을 관리하고 보존하는청지기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이 말하는 축복의 의미입니다. 

 

“‘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민수 6:24~26

 

흥미로운 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민수기에서 모세가 아론과 이스라엘을 축복할 사용한 단어도 바라크입니다. 아마도 과거 이스라엘은 말씀을 읽을 모두 창세기 1 28절을 연상했을 겁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라이것은 축복이면서도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인간은 생명이란 충만한 복을 이미 받은 존재들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손으로 만질 있고 소유하고 계승될 있는 것이 , 바라크란 동사는 명사형으로 사용됩니다. 바라크의 명사형은베라카(בְּרָכָה berākhāh)” 이는 창세기 27장에서 이사악이 야곱에게 복을 사용된 단어입니다. 여기에서는 모두 명사형베라카 사용됐습니다. 베라카소유, 전수, 박탈 가능한 실체적인 복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바라크 손으로 만질 있고 체감할 있는 가시적 축복으로 열매를 맺을 베라카 됩니다. 아담에게 내린바라크 아브라함과 이사악을 거쳐 야곱에게서베라카 됐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창조의 축복이 이제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구현되기 시작했음을 뜻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공중의 새와 들꽃을 언급하신 것은 물론 마태오복음 5장의 팔복 선언의 복에 근거합니다. 팔복선언에서 사용한 복은 헬라어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 makarios)”입니다. 이는 종말론적인 뉘앙스가 강한 복입니다. 현재에는 고난을 겪나, 하느님의 나라가 도래하면 위로받을 것이니 행복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오병이어 이야기에서 주님께서 강복하시는 말씀과 연계해서 해석하면 오히려 의미가 구체적으로 됩니다. 빵과 물고기를 강복하실 사용하신 단어는 헬라어에울로게오(εὐλογέω)”입니다. 헬라어는 축복이란 뜻의바라크 대응하는 단어입니다. 70 역에서는 바라크 모두 헬라어에울로게오 번역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에울로게오는  εὖ (에우, '좋은', '선한') λόγος (logos, '', ‘도리’) 합성어로, 우리말로 직역하면좋은 됩니다. 아마도 바라크라는 히브리어 축복의 의미를 모두 담을 헬라어가 없었던 듯합니다. 그러나 로고스를 추구했던 헬라 문화의 입장에서는에울로게오 선택한 것이 가장 최선이었을 겁니다. “좋게 말하다라는 의미는 복을 선언하다.” 또는찬양하다, 송축하다라는 의미로 모두 사용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복을 선언하는 것과 창세기에서 천지창조를 말씀으로 하신 것과도 일치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 선포로 인해 주어지는 영적인 복까지 포함하게 됩니다. 그리고 에울로게오는 우리가 매주 참례하는 성찬례가 원복의 회복임을 암시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는 복의 통로가 됩니다. 

 

70 역은 창세기 1 28절을 비롯하여 오늘 민수기 말씀에도 헬라어에울로게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주님께서도 분명 바라크의 의미를 알고 계셨을 겁니다. 성서 기록자들은 히브리어의 바라크를 에울로게오로 기록했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히 알았습니다. 바라크는 성서가 말하는 모든 축복의 근원인 원복(Original Blessing, 原福)”이기 때문입니다(메튜 폭스). “원복원죄보다 앞섭니다. 당시의 사람들이라면 말의 뜻을 누구보다 알았을 겁니다. 아마도 그러한 바라크 안에 자신들이 하느님과 관계함을 알았기에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생존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축복의 계보를 이어간다는 자부심. 그것은 바라크라는 축복을 소유한 자만의 특권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우리 손에 충분한 것이 없어도, 삶이 찌들고 힘들어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것은 공중의 새들과 들의 들꽃처럼우리도 그러한원복 받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새와 들꽃조차 창세기 1 22절과 28절의 축복을 저렇게 누리고 있는데 어떻게 그러한 것을 돌보는 청지기인 인간은 그토록 무기력하고 무지한지를 주님께서는 오늘 회중들에게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너희가 바로 주인이고 청지기이다. 새와 들꽃을 보살피고 관리하는 것도 바로 너희다. 나는 축복의 근원이고 너희는 축복의 통로이다. 이것이 주님의 말씀이 아닐지 생각합니다. 그러시면서 공중의 새들과 들꽃들이 오히려 너희를 부러워한다고 말씀하시는 같습니다. 바라크는 이러한 것입니다. 축복은 구원받은 자에게 주어진 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실존의 근거이며존재의 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절망 가운데도 불굴의 의지로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를 이어주는 이러한 바라크는 철저한 언약과 계약 관계로 묶여 있습니다.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바라크가 우리와 하느님과의 관계의 본질이고 뿌리이며원복임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할 같습니다. 흔들림 없이 여러분의 실존이 이러한 원복 가운데 놓이기를 빕니다. 항상 주님과 끊임없는 관계성 속에서 여러분의바라크 구체적인베라카 일상에서 열매 맺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하느님 은총의 선물입니다. 모두 새해에 하느님의 복을 아주 많이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음력 1.1. 설날

 

본기도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대대로 번영을 누리게 해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비오니,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선조들의 영혼을 기억하오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주님의 자녀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민수 6:22-27

22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3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주라고 하여라. 24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25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26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성시_시편 89:1-2, 11-16

1    주여,
.     내가 당신의 사랑을 영원히 노래하리이다.
.     당신의 미쁘심을 대대로 전하리이다.
2    당신께서 다짐하신 사랑,
.      미쁘심은 하늘처럼 영원히 흔들리지 않습니다.
11  하늘이 당신 것이오니, 땅도 당신의
.     땅과 안에 담긴 모두 당신께서 만드신 것이며,
12  북녘과, 남녘을 만드신 이도 당신이오니
.     다볼산도 헤르몬산도
.     당신의 이름을 찬양하옵니다.
13   모든 전공이 당신의 것이니
.     억세신 당신 손이여, 탁월하신 오른손이여.
14  정의와 공정이 당신의 옥좌를 받들고,
.     사랑과 진실이 당신의 거동을 인도하옵니다.
15  복되어라, 주님께 만세 부르는 백성
.     그들이 걷는 길을
.     당신의 환한 얼굴이 비춰 주시니
16  날마다 이름 높이 기리고
.     당신의 정의로 사기도 드높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야고 4:13-17

13 오늘이나 내일쯤 아무 아무 도시로 가서 동안 거기에서 지내며 장사를 하여 돈을 벌어보겠다.” 하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합니다. 14 당신들은 내일 당신들의 생명이 어떻게 될는지 알지 못합니다. 당신들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버리는 안개에 지나지 않습니다. 15 그러므로 당신들은만일 주님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우리는 살아가며 이런 저런 일을 해보겠다.” 하고 말해야 입니다. 16 그런데도 당신들은 지금 허영에 들떠서 장담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담은 모두 악한 것입니다. 17 사람이 제가 마땅히 해야 착한 일을 알면서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죄가 됩니다.

 

 

 

복음서_마태 6:19-21, 25-34

19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마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20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어 못쓰게 되는 일도 없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가지도 못한다. 21 너희의 재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

25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시간인들 늘일 있겠느냐? 28 너희는 어찌하여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입히시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것을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