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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현실’에서 ‘영적 현실’로 돌파하기

2022.2.6. 연중5주일 감사성찬례 이사 6:1-13 / 시편 138 / 1고린 15:1-11 / 루가 5:1-11 ‘심리적 현실’에서 ‘영적 현실’로 돌파하기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모든 영적 현실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분명한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리고 모든 심리적(정신적) 현실의 기초는 인간 정신의 어둡고도 불투명한 충동과 갈망이다.” (디트리히 본회퍼 / ‘신도의 공동생활 성서의 기도서’ 중에서) 예수께서 수제자들을 부르신 ‘소명사화’는 네 복음서가 모두 기록하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인 틀은 마태오, 마르코, 루가가 유사하고, 요한복음은 전승자료가 조금은 다릅니다. 가장 오래된 전승은 마르코의 것으로 마태오와 루가는 아마도 마르코 복음을 참..

글모음/설교문 2022.02.05

[수요 1분 묵상]“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루가 2:35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루가 2:35 마리아는 천사의 수태고지도, 목자들의 신탁도 늘 침묵 속에서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루가 2:19)라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의 봉헌’에서도 마리아는 시므온의 신탁의 노래를 듣고 또 마음속 깊이 이를 간직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픕니다. 자기 아들의 소명에 대한 신탁은 늘 영광과 고통이 함께 뒤범벅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귀와 입에는 달콤하지만 늘 마음은 창자가 찢어지는 듯한 아픔뿐입니다. 마리아가 받은 소명은 이렇게 우리 교회의 소명과 연결됩니다. 주님의 제자도는 정확하게 그분의 십자가로 향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을 동시에 소명으로 받았..

믿음의 계보-설명절별세기념성찬례

2022.2.1. 다해. 화. 설날별세기념성찬례 민수 6:22-37 / 시편 89:1-2, 11-16 / 야고 4:13-17 / 마태 6:19-21, 25-34 “믿음의 계보”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오늘은 ‘오늘의 본기도’에 담긴 내용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총 네 가지 주제입니다. 다시 한번 본기도를 읽어드리겠습니다.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주님의 은혜로 우리가 대대로 번영을 누리게 해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비오니, 설날을 맞이하여 우리 선조들의 영혼을 기억하오니,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영원한 안식을 주시고, 주님의 자녀 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가정을 이루게 하소서.” 1. 대대로 (믿음의 계보)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

글모음/설교문 2022.02.01

소명 (2)

2022.1.30. 주의 봉헌 축일_연중4주일 감사성찬례 말라 3:1-5 / 시편 24:(1-6)7-10 / 히브 2:11-18 / 루가 2:22-40 “소명 (2)”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유대인들은 ‘정결법’(레위 12:1-8)에 따라 여자가 아이를 낳으면 남아일 경우는 40일 후에, 여아일 경우에는 80일 후에 일년생 어린양 한 마리와 비둘기 한 마리를 각각 바쳐야 했습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는 ‘빈자의 제물’이라 해서 비둘기만 바칠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 부정함의 당사자인 여자만 성전에 방문하면 되는데 오늘 이야기는 요셉까지 함께 했다고 기록됐습니다. 또 ‘속량법’(출애 13:2,12-13,15; 34:20; 민수 3:12-13; 18:15-16)은 맏아..

글모음/설교문 2022.01.29

[수요 1분 묵상] 복음의 신비-마르 4:11-1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준다. 그것은 그들이 ‘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보고 알아듣기만 한다면 나에게 돌아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마르 4:11-12 우리는 왜 전도를 못할까요? 복음적인 삶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또 복음적인 메시지도 남에게 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르코복음이 쓰여지던 당시 마르코공동체 또한 이러한 심한 좌절에 빠진 것 같습니다. 주님의 때는 더디오고, 전도는 생각처럼 쉽지 않고, 핍박은 날로 늘어가고… 그때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마르코는 이를 ‘미스테리온(신비)’이란 말과 ..

소명 (1)

2022.1.23. 연중 3주일 감사성찬례 느헤 8:1-3, 5-6, 8-10 / 시편 19 / 1고린 12:12-31상 / 루가 4:14-21 “소명 (1)”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소명을 받고 아비 친척집을 떠나 낯선 땅 팔레스타인 지방으로(창세 11:31) 자신의 가솔들을 이끌고 갑니다. 그 후 그는 기근을 겪고, 이집트에서는 아내를 빼앗기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또 함께 갔던 조카 롯과 갈라서고, 종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 때문에 가정에 불화도 겪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목격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사악을 얻은 대신 첫째 아들인 이스마엘을 쫓아내야 했고, 심지어 사랑하는 아들인 이사악을 제물로 야훼께 바치는 시험도 통과해야 ..

글모음/설교문 2022.01.22

[수요 1분 묵상] "손을 펴라." 마르 3: 5

“손을 펴라.” 마르 3:5 우리가 움켜쥐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움켜쥔 것은 우리의 아집이고, 욕망이며, 질투이고, 편견입니다. 움켜쥔 손은 오그라든 손입니다. ‘오그라든 손’은 주먹밖에 쥘 수 없어 남을 섬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움켜쥔 손은 남을 공격하는 데 사용됩니다. 움켜쥔 손과 ‘오그라든 손’은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탄식하시며 노기 띤 얼굴로”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손을 펴라.” 주님의 명령에 ‘아멘’하는 자 만이 굳은 손이 펴지는 것입니다. 손을 펴고 나면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 오히려 안식일을 어겼다는 비난처럼 우리는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손을 펴라.” 주님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자신의 손을 펴시기 바랍니다.

[수요 1분 묵상] 하느님의 부르심 - 마르 1:31

“예수께서 그 부인 곁으로 가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열이 내리고 부인은 그들의 시중을 들었다.” 마르 1:31 베드로는 “베싸이다” 출신입니다.(요한 1:44) 그러므로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가 묵은 가파르나움의 집은 아마도 처갓집일 가능성이 큽니다. 사위와 사돈 청년이 동시에 그 집에 묵은 데다가 예수의 일행까지 그곳을 본거지로 활동을 시작했으니 장모는 딸의 앞날이 걱정이 되어 병이 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수입 없이 앞으로 살아갈 일도 막막했을 테니깐요. 그러나 오늘 예수께서는 장모의 열병을 계기로 장모 또한 하느님의 사역에 부르십니다. 그리고 그녀는 열병이 나아 자신의 집 모든 손님들을 기쁜 마음으로 시중들었다고 복음서는 기록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은 그분의 뜻을 알기 전에는 참 무모하고 힘..

[수요 1분 묵상]사랑의 머무름 - 1요한 3:14b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1요한 3:14b 주님께서 사랑을 표현하시는 방법은 늘 누군가와 함께 시간을 나누고, 장소를 공유하며, 함께 식사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별도로 기도를 위해 한적한 곳을 찾을 때를 제외하고는 늘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을 부르시는 방법도 늘 “나를 따라오너라” 또는 “와서 보라”(요한 1:39)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의 초대은 늘 상대에 대한 배려와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누구와 그런 시간을 보내며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지요? 코로나 때문에 더욱 만남이 어려운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따듯한 통화라도 해보시면 어떨까요? 날이 추우니 더욱 그리운 사람들이 많이 떠오르네요. 평안한 저녁시간 보내시길 빕니다.

[수요 1분 묵상] '작은 자들에 대한 아픔'-마태 2:18

“라마에서 들려오는 소리, 울부짖고 애통하는 소리, 자식 잃고 우는 라헬, 위로마저 마다는구나!” 마태 2: 18 어린아이들의 죽음은 ‘신정론’을 떠나 부모들과 모든 사람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아픔은 예수의 탄생에 얽힌 인간 실존의 어두운 그림자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평생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까지 지고 가실 아픔이었습니다. 인간의 깊은 고통에 대한 그분의 이해는 가장 ‘작은 자들’에 대한 아픔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임마누엘 아기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신 우리는 그분과 함께 고통받는 자와 함께 아파하고 울어주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 가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 생각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그러한 공감의 능력과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