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162

내 마음의 포도밭

2020.10.4. 가해_연중27주일_감사성찬례 아씨시의 프란시스(수사, 부제, 수도공동체 '작은 형제들' 설립자, 1226년) 출애 20:1-4, 7-20 또는 이사 5:1-7 / 시편 19 또는 시편 80:7-15 / 필립 3:4하-14 / 마태 21:33-46 내 마음의 포도밭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오늘 복음서의 말씀은 포도원과 관련된 이야기들 중 하나입니다. 20장의 “포도원 일꾼과 품삯” 이야기, 21장의 “두 아들의 비유” 그리고 오늘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이 이야기들의 포도원 주인들은 모두 “하느님”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장의 “포도원 일꾼과 품삯”이야기와 21장의 “두 아들 비유”의 포도원 주인은 관대한 성격인데 비해 오늘 읽은 포도원 주인은 무..

글모음/설교문 2021.02.26

지금은 돌이킬 때입니다.

2020.9.27. 가해_연중26주일_감사성찬례 출애17:1-7 또는 에제 18:1-4, 25-32 / 시편 78:1-4, 12-14 또는 25:1-9 / 필립2:1-13 / 마태 21:23-32 지금은 돌이킬 때입니다.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너희의 행실을 고쳐라. 거역하며 저지르던 죄악을 모두 버리고 마음을 돌려라. ” (에제18:30하) 오늘 1 독서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마음을 돌려라”는 히브리어로 “슈브(שׁוב, return, turn back)”인데 이를 70인 역(Septuagint)에서는 ἀποστρέφω 아포스트레포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는 ‘돌이키는 행위’를 강조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뜻의 히브리어는 “니함(נִחַם, regret)”인데 70인역은 이를..

글모음/설교문 2021.02.12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

2020.9.20. 가해_연중25주일_감사성찬례 요나 3:10-4:11_시편145:1-8_필립 1:21-30_마태 20:1-16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자비)”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사제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용역사무소 앞은 일용직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몰려든 많은 사람으로 북적입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야 하는 “날품팔이의 삶”. 특히 추운 겨울 혹독한 한기가 몰아쳐도 그들은 자신들의 몸뚱이 하나에 의지하여 그곳에 모입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그날 하루의 생계가 막막해집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을 볼 면목조차 없습니다. 비나 눈은 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아픔을 줍니다. 그런 날의 아침은 정말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삶은 정말 녹록..

글모음/설교문 2021.02.11

용서와 은총의 상관관계

2020.9.13. 가해_연중24주일_감사성찬례 창세 50:15-21_시편103:8-14_로마 14:1-12_마태 18:21-35 용서와 은총의 상관관계 채야고보 신부/ artist, 성공회 사제 오늘 읽은 마태오복음 18장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교회설교집성문”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앞의 말씀들의 출처가 마르코 복음과 예수어록인 것에 반해, 오늘 말씀은 “마태오의 특수자료”입니다. 이는 마태오가 어떤 자료를 참고 삼아 자신의 의도대로 가필을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도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통해 ‘용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21절~22절의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는 문장을 서두로 하고 35절의 종말론적인 심판의 메시지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미 지난주에 말씀드린 ..

글모음/설교문 2021.01.26

단 두세 사람이라도…

2020.9.6. 가해_연중23주일_감사성찬례 에제 33:7-11_시편119:33-40_로마 13:8-14_마태 18:15-20 / 여성선교주일 단 두세 사람이라도…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혼자 보다는 둘이 덜 외롭고, 둘보다는 셋이 큰 힘이 됩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잘 알면서도 누군가와 함께 공동체를 이루는 일에는 많은 부담을 갖습니다. 혼자 일 때 보다 둘이, 둘 보다는 셋이…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갈등의 요소 또한 점점 커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군중 속에서 더 ‘소외’를 느끼는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소속감 때문에 안정감도 얻지만, 그 속에서 생겨나는 갈등으로 인한 소외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욱 심하게 우리를 고독하게 만듭니다...

글모음/설교문 2021.01.22

성聖과 속俗, 그 경계의 창문에서

2020.8.23. 가해_연중21주일_감사성찬례 이사 51:1-6 / 시편 138 / 로마12:1-8 / 마태 16:13-20 성聖과 속俗, 그 경계의 창문에서 성(sacrum, sacred)과 속(profanum, profane)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근대 이전의 인간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이 실재(實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을 숭배하고 나무를 숭배하던 고대인들에게 이 자연은 속된 어떤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알 수 없는 거룩함이 실재한다고 믿었습니다. 신성하게 여기는 돌과 나무는 자연세계의 돌과 나무와 본질적으로 전혀 차이가 없지만, 그 자체에 거룩함이 현존하는 순간 그것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그것을 종교학자들은 ‘성현 (hierophany, ἱερός, 신성한 - ..

글모음/설교문 2021.01.21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 디카이오쉬네 δικαιοσύνη, 의)

2020.8.9. 가해_연중19주일_감사성찬례 열왕상 19:9-18 / 시편 85:8-13 / 로마 10:5-15 / 마태 14:22-33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디카이오쉬네 δικαιοσύνη, 의) 채야고보 신부(artist / 성공회 사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공동번역 성서는 ‘의, 디카이오쉬네 δικαιοσύνη, righteousness’를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로 번역을 했습니다. 아마도 ‘의’라는 말의 의미를 의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좀 쉽게 풀어서 설명한 것이지요. 그러나 막상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가 과연 무엇인가?라고 할 때 간단히 대답하기 쉽지 않습니다. ‘의’, ‘디카이오쉬네’는 헬라어 명사형으로 ‘정직’, ‘정의’, ‘법 실행’, ‘법 이행’의 의미를 가진 법정 용어로 사용되..

글모음/설교문 2021.01.19

고통과 서러움의 계보: 레아에서 그리스도까지

2020.7.26. 가해_연중17주일_감사성찬례 안나와 요아킴(성모 마리아의 부모) 창세 29:15-28_ 시편 105:1-11,45_ 로마 8:26-39_ 마태 13:31-33, 44-52 고통과 서러움의 계보: 레아에서 그리스도까지 채야고보 신부 (artist / 성공회 사제) 레아와 라헬 레아에게서 유다가 나왔으니 그녀는 남유다의 조상이고, 라헬의 아들 요셉에게서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나왔으니 그녀는 북이스라엘의 조상이 됩니다. 여기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의 장자권이 누구에게로 간 것일까요? 레아와 라헬 간의 갈등은 그대로 야곱의 12 아들들에게 대물림 됐습니다. 그래서 야곱 가문의 가장 큰 비극인 요셉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레아에게서 유다가 나왔고 그 유다 지파에서..

글모음/설교문 2021.01.18

하느님 앞에 선 개인(개별자 또는 단독자)

2020.7.12. 가해_연중15주일_감사성찬례 창세25:19-34_시편119:105-112_로마8:1-11_마태13:1-9,18-23 하느님 앞에 선 개인(개별자 또는 단독자) 채야고보 신부 (artist / 성공회 사제) 오늘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이 드디어 이스라엘 역사 무대에 등장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기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라는 문구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이 아브라함에서 이사악으로 바뀐 거죠. ‘아브라함의 하느님’이 이제 ‘이사악의 하느님’이 됩니다. 그러나 창세기 기자는 이사악의 이야기 보다, 곧바로 그의 쌍둥이 자손인 에사오와 야곱이 어떻게 각각 “하느님 앞에 선 개인”으로 서게 되는 지를 기록합니다. 하느님의 전권을 가진 이스라엘의 “새로운 율..

글모음/설교문 2021.01.17

죽었던 자식을 다시 찾은 심정으로...

2020.6.28. 가해_연중13주일 감사성찬례 창세22:1-14 _시편13 _로마6:12-23 _마태10:40-42 죽었던 자식을 다시 찾은 심정으로... 채야고보 신부 (artist / 성공회 사제) 오늘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산은 ‘모리야 산’입니다. 많은 논란은 있지만 이 산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골고다 언덕과 같은 곳이라고 전해 내려옵니다. 이에 대해서는 역대하 3장 1절에 “솔로몬은 선왕 다윗이 환상으로 본 예루살렘 모리야 산에 야훼의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실 관계를 떠나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과 골고다의 십자가 사건은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확실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 “부활 사건의 유비”(아날로기아, ἀναλογί..

글모음/설교문 2021.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