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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언’ (2)

2022.4.17. 부활대축일 사도 10:34-43 / 시편 118:1-2, 14-24 / 1고린 15:19-26 / 요한 20:1-18 ‘부활의 증언’ (2)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마르코복음 16:1-8절의 ‘빈무덤 사화’와 4복음서 모두 기록하고 있는 ‘여인들의 부활 아침 빈무덤 발견 이야기’ 중 어떤 것이 초기의 것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학자들 간에도 이는 아직 논쟁 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에 대해서 억측이 아니라 믿음의 차원에서 이 두 보도에 대해 묵상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사실이 무엇이든 이 두 보도는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진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초기 원기 기독교 공동체는 이를 예수 부활의 물리적 증거로 확증하려 했던 것 같습니다. 왜..

글모음/설교문 2022.04.17

‘부활의 증거’ (1)

2022.4.16. 성 토요일 부활 밤 예식 구약 7가지 말씀 / 로마 6:3-11 / 시편 114 / 루가 24:1-12 ‘부활의 증거’ (1)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안식일 다음날 아직 동이 채 트기도 전에 그 여자들은 준비해 두었던 향료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다. 그들이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은 이미 굴러 나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무덤 안으로 들어가 보았으나 주 예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루가 23:1-3) 사복음서는 동일하게 여인들이 예수의 ‘빈무덤’을 발견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는 부활에 대한 첫 증언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복음서에 기록된 부활 이야기들을 면밀히 관찰해보면 부활에 대한 첫 증언들을 간추려 볼 수 있습니다. 그 첫 증언들 이..

글모음/설교문 2022.04.17

십가가, 하느님 부재의 자리

2022.4.14. 성 금요일(주님의 수난) 예식 이사 52:13-53:12 / 시편 22 / 히브 10:16-25 / 요한 18:1-19:42(수난복음) ‘십자가, 하느님 부재의 자리’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오늘 우리는 여느 때처럼 아침을 맞이했고, 직장이나 집안일을 했으며, 여느 때처럼 식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났으며 평소처럼 또 우리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오늘은 다른 일상과 다를 바 없이 평범했으며, 특별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년 찾아오는 이 금요일을 다른 날들과 조금은 다르게 느낍니다. 하루 종일 우리 마음 구석에 무거운 무엇인가가 웅크리고 있는 듯, 우리의 미소가, 우리의 말이 여느 때와는 다름이 느껴집니다. 해와 달, 하늘과 나무들, 거리의 자동차..

글모음/설교문 2022.04.16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

2022.4.14. 성 목요일(성찬 제정/세족례) 감사성찬례 출애 12:1-4(5-10)11-14 / 시편 116:1-2, 12-19 / 1고린 11:23-26 / 요한 13:1-17, 31하-35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요한 13:1) 오늘 읽은 복음서의 앞부분에 나온 문장입니다. 이를 다시 번역하면 “이 세상에서 사랑해 오셨던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때를 직감하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사랑의 표현이 바로 ‘세족례’ 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끝까지, τέλος’라는 말은 문맥상 ‘시..

글모음/설교문 2022.04.15

‘수난이 기쁜 소식이 되는 삶’

2022.4.10. 고난주일/성지주일 감사성찬례 이사 50:4-9상 / 시편 31:9-6 / 필립 2:5-11 / 루가 22:14-23:56 ‘수난이 기쁜 소식이 되는 삶’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성당에서 ‘십자가’가 사라졌습니다. 매년 한 번 우리는 고난주일부터 부활 전까지 교회 내에서 ‘십자가의 상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이는 ‘주님의 부재’를 표현합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우리는 두 번 수난복음을 읽습니다. ‘성지 주일’에, 그리고 ‘성 금요일 예식’에서. ‘수난복음’이란 말은 참 이상한 말입니다. ‘수난’이란 말과 ‘복음’이란 말이 합쳐서 된 말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수난’의 이야기가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

글모음/설교문 2022.04.10

“하느님의 기쁨” (회개-2)

2022.3.27. 사순 4 주일 감사성찬례 여호 5:9-12/ 시편 32 / 2고린 5:16-21 / 루가 15:1-3, 11하-32 “하느님의 기쁨” (회개-2)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작은 아들이 재산을 상속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는 수없이 두 아들에게 공평하게 재산을 나눠줬습니다. 그 길로 작은 아들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여 집을 나가 온갖 방탕한 생활을 하며 가진 것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모두 하고 산 것이지요. 그러나 큰아들은 장남이란 의무감 때문이지 아니면 모험심이 없어서 인지 물려받은 재산을 가지고도 아버지 곁에서 충실하게 가족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큰아들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 왜 없..

글모음/설교문 2022.03.26

[수요 1분 묵상]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오히려 완성하러왔다.” 마태 5:17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오히려 완성하러왔다.” 마태 5:17 유대인들은 율법 조문의 문자적 해석과 실천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보다 더욱 극단으로 율법의 말씀을 해석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그 정신을 살리는 것에 더 방점이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문자적 해석이 아니라 그 문자와 그 행간에서 읽히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정신을 말합니다. ‘시니피앙’이 아니라 ‘시니피에’에 더 방점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이미 주님의 산상수훈을 통해 모두 표현이 됐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가르침대로 살 준비가 됐느냐입니다. 성령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의 선택에 따르는 합당한 행동들이 늘 함께..

“하느님의 은총에 압도된 회개” (회개-1)

2022.3.20. 사순 3 주일 감사성찬례 이사 55:1-9 / 시편 63:1-8 / 1고린 10:1-13 / 루가 13:1-9 “하느님의 은총에 압도된 회개” (회개-1)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사제, Artist 회개란 무엇입니까?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단어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사용된 ‘회개’라는 말도 메타노이아의 동사형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입니다. 그러나 이 단어 하나로 오늘 본문의 회개에 대한 표상들이 전부 드러나지 않습니다. 회개는 반성이나 참회, 속죄와도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는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망할 것이다.”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기록했습니다. “망할 것이다.” ‘아포레이스테 ἀπολεῖσθε’. 미래형으로 이..

글모음/설교문 2022.03.19

[수요 1분 묵상]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마태 20: 23c

“그 자리에 앉을 사람들은 내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다.” 마태 20: 23c 하느님의 나라에서 주님의 좌우편에 앉을 사람들을 정해 놓으셨다는 말씀. 마치 예정설처럼 들리지만, 이는 하느님 나라의 열린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리”라는 말을 공동번역이 삽입을 하여 더 혼란스럽습니다. 구원과 상급에 대한 것은 ‘가능성’으로 모두에게 열려있습니다. 그 가능성의 귀결은 오직 성부 하느님께 귀속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한 밖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향해 열린 가능성. 하느님 나라는 모두에게 열린 문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지만, 선택된 자는 적다고 말씀하시니(마태 22:14) 우리는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선택에는 반드..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2022.3.13. 사순 2 주일 감사성찬례 창세 15:1-12, 17-18 / 시편 27 / 필립 3:17-4:1 / 루가 13:31-35 “그러나 너희는 원하지 않았다.”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사제, Artist 한마음으로 당신을 위하면 당신께서도 한마음으로 위해 주십니다. 흠없이 당신을 위하면 당신께서도 흠없이 위해 주십니다.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당신을 받들면, 당신께서도 두 마음 품지 않고 붙들어주십니다. (시편 18:25-26) 오늘 읽은 복음서 말씀에서 선지자와 예루살렘의 이미지가 교차 비교되어 묘사됩니다. 즉 선지자들의 죽음과 그들을 죽인 유대인들의 이미지 말입니다. 루가는 구약의 선지자들의 죽음을 통해 예수의 죽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선지자들의 죽음과..

글모음/설교문 2022.03.12